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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천양희 시인 / 삶에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9.

천양희 시인 / 삶에게

 

 

사방으로 허둥대며

어디로 간다

발목에는 굵은 쇠사슬을 달고

네가 어디로 확실하게 간다

 

광화문(光化門)이나 신촌(新村)

어디로 가든 길은 안 보이고

입 앙다물고 버티어 선

가죽같이 질긴 끈

아무리 끊으려도 끊어지지 않는다

공기처럼

핏줄처럼

잘라도 잘라도

그것은 쇠사슬쇠사슬쇠사슬

 

나는 그곳에

덜컹덜컹 자물쇠를 채웠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세월은 갔다.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3

 

 


 

 

천양희 시인 / 서로보기

 

 

달리는 것이 무서워져

서 있으려 한다

 

한줄기 아스팔트를 피해

주저없이

억울하지 억울하지

너혼자 서 있는 것은

달려가는 사람들이

비웃으며 맹렬히

비웃음 속으로 달려간다

 

빌어먹을, 온몸 송두리째

개같이 짖어대며

시시각각 한줄에 꿰어 달려간다

 

어디서나 우왕좌왕

달려가고 달려가고 달려가고

억울하지? 억울하지?

너 혼자 서 있는 것은

그림자가 슬그머니

나를 따른다.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1983

 

 


 

천양희(千良姬) 시인

1942년 부산에서 출생.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