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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하림 시인 / 날마다 산길 1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9.

최하림 시인 / 날마다 산길 1

 

 

숲속으로 들어갔어요

뭉개구름 같은 숲속으로요

햇볕이 강한 날인데도

빛방울 하나 들어오지 못하고

나무들이 숨막히게 들어 차, 가느다란

신음이 터져나더군요 처음에는

왼발이 아아아아 소리지르고 뒤이어

바른발도 조금 낮게 아아아아 하고……

나는 그것이 감각적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이에요, 얼마나 캄캄했던지,

나무들이 굉장한 속도로 자라고, 바위가 여기저기 돌출하고

나중에는 계곡의 후미까지도 바람처럼 트이어,

나는 이제, 어떤 나무 아래 있는지

밤 지나 마을은 어디로 가는지

어떤 밤으로 흘러가는지

그대는 어째서 입구에서 우는지

너무나도 아프고 아픈 기억들

이 바위틈새도

약초꽃 피었네

가다가, 가다가,

보라고 피었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날마다 산길 2

 

 

도선사 길을 오른다

큰바위 아래 가쁜 숨쉬고

암자 곁 샘에서 물 한 모금 먹고

눈 마주쳐도 얼굴색 바꾸지 않는

비구니를 뒤에 두고 지상에 그림자 하나

떨어뜨리는 일 송구스러워하는 마음을

생각한다 적멸보궁이 어디죠? 물으니

눈으로 대답한다 어두운 눈빛!

신발을 벗고 보궁으로 들어가,

남무아미타불을 곡조를 넣어서

읊조리는, 나는, 일어서고 허리굽히는

불자들을 넋도 없이 본다

내려오는 길­북한산 바위들이 꽃처럼

피고 냇물 소리 깊은 곳에서

어떤 사내가 어두워 소리지른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崔夏林,1939.3.7 ~ 2010,4.22]  시인

1939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貧弱한 올페의 回想〉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와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판화 시선집 『겨울꽃』, 자선 시집『침묵의 빛』 그리고 시전집 『최하림 시 전집』 등이 있음 그 밖에 미술 산문집 『한국인의 멋』, 김수영 평전『자유인의 초상』과 수필집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최하림 문학산책 『시인을 찾아서』 등을 펴냄. 제11회 이산문학상,

제5회 현대불교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분 최우수상 수상. 전남일보 논설위원, 서울예술대학 교수 역임. 2010년 간암으로 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