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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물 위에 물 아래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수부(水夫)는 시체를 건지려 호수 밑 바닥으로 내려가 호수 밑 바닥에 소리없이 점점 불어나는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버려진 태아와 애벌레와 더러는 고양이도 개도 반죽된 개흙투성이 흙탕물 속에 신발짝, 깨진 플라스틱통, 비닐조각 따위를 먹고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갈수록 시체처럼 몸집이 불어나는 무덤을 본다 폐수의 독(毒)에 중독된 채 창자가 곪아 가는 우울한 쇠우렁이를 물가에 발상했던 문명(文明)이 처리되지 않은 뒷구멍의 온갖 배설물과 함께 곪아 가는 증거를
호수를 둘러싼 호텔과 산들의 경관에 취하면서 유원지를 향해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바퀴벌레 일가(一家)
소비자의 욕망을 언제든지 충족소비시켜주는 자동판매기에 바퀴벌레 일가(一家)가 산다 매춘부 안에 포주의 식구들이 살듯이 그들의 껍질은 윤택하다 구멍이 돈을 삼키며 시작되는 홍등의 아침 커피와 밀크의 향기는 훈훈하게 설탕과 꿈은 무한하게 그리고 마지막 동전 떨어지는 소리 뒤에 밤이 온다 밤의 고요는 밤잠 없는 욕망에 찢어진다 고무호스가 창녀의 방광에서 뻗는 요도(尿道)처럼 물통에 매달려 종이컵에 뜨신 물 붓는 자동판매기에 바퀴벌레 일가(一家)가 산다 그 옹기종기한 식구들이 지닌 사랑의 한계를 우리들 또한 지니고 있다
灼晩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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