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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녀 시인 / 벚꽃이 지기 전에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9.

김지녀 시인 / 벚꽃이 지기 전에

 

 

  떠나야겠다, 몇 번의 짐을 챙기고 푸는 동안 사랑은 몸을 옮기고

  떠나야겠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버지는 하얀 꽃그늘 을 아주 거두어갔다

 

  무릎걸음으로 달려가지만

  당신은 저 멀리 검은 자루처럼 앉아 있네

  내게 손짓을 하네

  깨진 유리 같은 당신의 자리 그러니까 당신은  지나가는 휘파람이었겠지

  여운처럼 남아 있는 구름이었겠지 아무리 불러도 잡히지 않는

  길 건너 나무였겠지

 

  내 안에서 앙상해진 나뭇가지

  뒤돌아보면 제자리인 꽃잎들

 

  나를 배웅하는 벚나무 저편으로

  하늘이 천천히 문을 열고 있네

 

  떠나야겠다,

  사라지는 저녁으로부터 이 넓은 꽃그늘로부터

  벚꽃이 다시 피기 전에

 

웹진 『시인광장』 2007년 겨울호 발표

 

 


 

김지녀 시인

1978년 경기도의 양평에서 출생. 성신여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제1회 〈세계의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시집으로 『시소의 감정』(민음사, 2009)과 『양들의 사회학』(문학과지성사, 2014)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