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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샌드 페이퍼
내가 터억하니 앉아 있는 이 데스크는 한때 보르네오숲이었다. 잘 자라온 나이테의 배때기에 비계를 불리며 원목(原木)은 즐거이 인도양 바람을 키웠다. 벌목꾼 마하트라씨(氏)는 일당을 받고 쓴 침을 삼키며 집으로 갔을 것이다. 인천(仁川) 대성목재(大成木材). 하루 종일, 견습공 김석만은 그것을 샌드 페이퍼로 문질렀다. 끝도 없는, 사막 같은 일. 청소도 하고 경리도 보는, 월수(月收) 13만 원짜리 미스 리가 미결재 서류를 잔뜩 갖다놓는다. 나의 노동은 매춘행위인가. 사방 데서 악쓰는 소리, 들린다. 내 몫, 내 몫, 내놔라. 내가 터억하니 앉아 있는 이 데스크는 말하자면, 나의 위장취업이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 시인 / 샛별
샛별*아.
이 밤길을 너는 먼저 달려가 새벽 산길을 비추고 있거라. 이 어둠 저편 누가 플래시를 버르장머리없이 비추며 온다. 두려워 말라. 그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어둠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무서운 것은, 다가오는 물체를 크게 보는 내 마음속에 있다. 네가 자라서 너의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 몇 차례 불심검문을 당하고 굴욕을 통과하여 더 탄탄해진 네 길을 갈 때 너도 알게 되리라. 쉽게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먼 새벽 산정에 이르른 길을.
* 샛별: 김진경 시인의 딸 이름. 그가 집에서 체포된 날 아침에 쓴 시.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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