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하림 시인 / 날마다 산길 3
꼭지에 바람을 거느리고 손이 많은 나무들이 고개를 구름쪽으로, 그러나, 구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간다 아픈 다리 끌고, 나는 심호흡한다 시간이 물들어 어느새 단풍나무 잎들이 떨어지고 양치식물들이 바위 곁에서, 바위 감으며, 바위들이 어깨서 꽃이 되는지, 입을 다문다 나는 바위들과 함께 땅에 뿌리내리고, 집 짓고 조금씩 눈물 흘리고 조금씩 웃음지으며, 주기도문 외운다 절망하는 일이 결코 없다, 이 숲속에서, 나는, 침묵을 배운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날마다 산길 4
그렇게도 단단한 가슴을 빠개고 터져나오는 도봉산 골짜기 자갈꽃! 오늘은 따갑게, 가을 물살에 추파 띠우네 등산객 서너 명 야호야호 소리지르며 깔끄막 오르고 응근하게 바람이 얼굴 흔드는 것도 모르고 어머니처럼 깊이, 산이 숨쉬는 소리 나무 위로 구름 흐르는 소리 햇빛 소리, 냇물 소리, 소음 소리 천상의 것들은 올라가고 지상의 것들은 내려가 그늘 깊은 땅으로 스미네 쓰라린 길 위에서 나는 걷네 바퀴가 마차를 빠져나가고 밤을 새고 어느새 숲은, 찰랑찰랑 어둠 넘치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경림 시인 /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외 2편 (0) | 2020.01.20 |
|---|---|
| 최승호 시인 / 밤의 힘 외 1편 (0) | 2020.01.20 |
| 신달자 시인 / 빨래 (0) | 2020.01.20 |
| 정호승 시인 / 무악재 외 1편 (0) | 2020.01.20 |
| 천양희 시인 / 술래 외 1편 (0) | 2020.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