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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밤의 힘
폭풍우에 휩싸인 채 정전된 밤의 도시 검은 아스팔트, 검은 강(江) 상점마다 촛불이 가물거린다 번갯불이 터진다 천둥이 친다 그것은 번갯불로 충전된 푸른 도끼다 때리면 별들이 힘차게 빛난다 때리면 산이 쩌렁쩌렁 운다 때리면 난장이들쯤이야 허지만 거신족(巨神族)이 아닌 이상 그런 도끼를 함부로 휘두를 만한 인간이 그 어디 땅 위에 있겠는가 번갯불이 터진다 천둥이 친다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채석장 혹은 옛날 스타일로 교미하는 용(龍) 한 쌍 얽힌 듯 질투하는 발톱 큰 용(龍) 한 마리 더 얽힌 듯 먹비늘을 긁어 대는 빛의 발톱 먹비늘을 뜯어 뱉는 빛의 이빨 벼락불이 떨어진다 천둥이 친다 고압선이 얽힌 도시의 하늘을 내리찍는 불의 시퍼런 도끼 기억해 두자 저 얼크러져 꿈틀대는 밤의 힘 비록 내가 거신족(巨神族)의 식탁을 위한 한낱 제물(祭物)에 혹은 밤이 낳고 밤이 먹는 밤의 아들에 불과하다 해도 세찬 빗발이 나를 두드리고 내가 다시 싱싱해지고 나의 두개골 안에 불타는 가시덤불의 거센 불길이 느껴지는 이 싱싱한 밤을.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밥숟갈을 닮았다
움푹해라 내 욕망은 밥숟갈을 닮았다 천만 개의 숟갈이 한 냄비에 덤비듯 꿀꿀거리고 덜그럭대는 서울에서 나도 움푹한 욕망 들고 뛰어 가고 보름달 뜨면 먹고 싶어라 둥근 젖 움켜쥘 그때부터 나는 아귀였던가 부르도자가 움푹한 입 벌리며 굴러 가고 기름진 돼지 머리가 웃고 있는 좌판 위의 서울 움푹해라 뒤뚱거리는 영혼도 밥숟갈을 닮았다 죽어서도 배가 부르게 해주십사 거위 주둥이를 벌린다
灼晩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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