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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솔섬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1.

황지우 시인 / 솔섬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읍내 `나그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집은 어디서 왔다요?" 성도 이름도 없는 여자가 묻는다.

 

"수상해?" "북에서 내려왔어."

 

그녀가 나를 꼬집는다.

 

"너는 어디서 왔냐?"

 

여수에서 영등포로, 미아리에서  부산으로, 목포로, 완도로, 해남으로 왔다, 그녀는. 대흥사 여관동네에서 한 2년?, 있다 장터까지 왔다, 그녀는.

 

"너도 끝장까지 왔구나."

 

"아저씨는 눈이 내 애인 닮았소잉."

 

"뭐 하는 놈인데?"

 

"중."

 

밤늦게까지 그는 그녀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따라주고 암자로 올라가곤 했다, 그 중은.  산 전체가 단풍으로 색(色)이 탱탱할 때, 그는 통도사(通道寺)로 가버렸다, 그 중은. 그녀는 광주 공용터미날까지 가서 배웅했다, 그녀는. 슬픈 가을 산으로 돌아왔다.

 

"내가 환속한 그 중놈이야, 내가." 쓰게 웃는다, 그녀가.

 

그녀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못생기고 늙은 이 작은 여자를 나는 넓은 가슴에 묻는다.

 

"집은 어디 간다요?"

 

"어란."

 

"어란 어디?"

 

"솔섬."

 

"거기 누가 있소?"

 

"아냐, 아무도 살지 않아."

 

횃대로 올라가는 닭, 그녀는 이내 잠이 든다.

 

1983년 12월 24일, 나는 지상에서 한 여자를 재웠다.

 

첫 미사를 알리는 천주교 종소리에 깨어났을 때, 그녀는 없었다. 2만 원만 챙기고 내 호주머니에 3만 원을 넣어두고 간 그녀의 발자욱을 금세 눈이 지우고 있었다.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나그네의 집'을 나왔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은 황재우.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