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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뿔쥐
위기의 시기였다 마루골이 삐걱거리는 복도 어둑한 곳에서 뿔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나를 혼란시킨 뿔쥐들, 잡으러 가면 온데 간데 없고 국어사전에도 없고 동물도감에도 없는, 다행히 쥐뿔이라는 말이 있었다 쥐뿔, 그곳이 바로 사전의 구멍이었다 나는 뿔쥐들이 그 구멍으로 쏟아져 나왔다고 생각한다 위기의 시기였다 모든 요일이 몽(夢)요일이었다 몽유병자들이 꿈 속의 현실을 흘러다녔다 비현실이기엔 너무 생생했던 사건들 쿠데타, 계엄령, 체포, 처형 위기의 시기였다 흘러 가며 줄어드는 몽유병자들의 무리를 새로운 몽유병자들이 흘러 들어 대신했다 떠밀려간 몽유병자들 사라진 그들이 구멍 저쪽 허(虛)구렁에서 한 군거집단을 이뤘는지 모르겠다 내가 불어난 그 만큼 움푹해진 또다른 마이너스의 내가 허(虛)구렁 저쪽에 존재한다는 이 희미한 느낌 내가 죽는 날이 바로 마이너스의 내가 태어나는 날일지 모른다 뿔쥐들은 그쪽에서 몰려 와 헛것인 것은 나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나는 대체 누군지 모르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몽(夢)은 짧고 환(幻)은 길 뿐이니 결코 뿔쥐들이 당신을 영원토록 쏠아 먹지는 않을 것이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사람이 하늘보다
사람이 하늘보다 어질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원두막에서 비를 피하던 농부들을 벼락이 때리는 순간이다
灼晩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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