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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경림 시인 / 두물머리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3.

신경림 시인 / 두물머리

부제: 두물머리에서 만난 북한강과 남한강이 주고받는 노래

 

 

조심조심 지뢰 사이를 지났지

긁히고 찢기면서 철조망도 넘었지

못다 운 넋들의 울음소리도 들었지

하얀 해골 덜 삭은 뼈에 대고

울면서 울면서 입맞춤도 하였지

 

내 몸에 밴 것은 눈물뿐이라네

쫓겨난 농투산이들 한숨뿐이라네

눈비 바람은 갈수록 맵차고

온 벌에 안개 더욱 짙어가지만

나는 보았네 땅 뚫고 솟는 빛살을

노래처럼 힘차고 굵은 빛살을

 

얼싸안아보자꾸나 어루만져보자꾸나

너는 북에서 나는 남에서

온갖 서러운 일 기막힌 짓 못된 꼴

다 겪으면서 예까지 흘러오지 않았느냐

내 살에 네 피를 섞고

네 뼈에 내 입김 불어넣으면

그 온갖 것 모두 빛이 되리니

춤추자꾸나 아침햇살에 몸 빛내면서

 

난한 사랑노래, 실천문학사, 1988

 

 


 

 

신경림 시인 / 먼 길

 

 

버릴 것은 버리고 줄일 것은 줄이자

아까울 것 없다 자를 것은 자르자

어둡고 먼 길을 떠나야 하니까

다가오는 어둠 끝내 밝지 않으리라

생쥐들 설치는 것쯤 거들떠도 볼 것 없다

불어닥칠 눈보라와 비바람 이겨내자면

겉에 걸친 것 붙은 것 몽땅 떨쳐버려야지

간편한 맨몸으로만 꺾이지도 지치지도 않고

먼 길 끝까지 갈 수 있지 않겠느냐

다 버리고 가지와 몸통만이 남거든

그래 나서자 젊은 나무들아

오직 맨몸으로 단단한 맨몸으로

외롭고 험한 밤길을 가기 위해서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 1993

 

 


 

 

신경림 시인 / 명매기 집

 

 

옛고장 사람들은 우리들더러

도망질쳤다 종주먹질하고

이 고장 사람들은 또

숨어들어왔다 눈흘긴다

저쪽에선 되돌아오지 말라 침 배앝고

이쪽에선 발 들여놓지 말라

금줄 쳐 막는다

달구지에 용달차에 화물차에 실려온

누더기라 헌 짐짝 서덜에 풀어놓고

산비알에 까맣게 움막을 치니

그래도 좋아라 갈갬질치는 내 새끼들아

이게 간데없이 명매기* 집이로구나

우리가 왜 모르겠느냐

너희 눈에 담긴 눈물이 머잖아

파랗게 불꽃으로 번득일 것을

활활 세상을 태우는

불꽃으로 타오를 것을

 

* 명매기:여름 한철 개울가 바위 벼랑에 집을 짓고 사는 새. 불길한 새라 하여 사람들이 동네 안에 들어오는 것을 꺼리는제, 그 눈에서 파란 빛이 일면 큰 재앙이 온다는 얘기가 있음.

 

난한 사랑노래, 실천문학사, 1988

 

 


 

신경림 시인

193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 이한직의 추천으로 월간 《문학예술》에 〈낯달〉1955. 12), 〈갈대〉(1956. 2), 〈석상〉(1956. 4)을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농무』, 『새재』, 『달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의 노래』, 『길』 등과 산문집 『민요기행 1·2』, 『강따라 아리랑 찾아』, 『시인을 찾아서』, 『낙타』 등이 있음.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