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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 서대문 하늘
죄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술병을 깨어 들고 가을에 너를 찔러 죽이겠다고 날뛰던 사막의 하늘. 어머니가 주는 생두부를 먹으며 죄 없는 푸른 가을이었다.
죄의 상처를 씻기 위하여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기보다 눈물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비 오는 창살 밖을 거닐며 아름다운 눈물의 불씨도 되고 싶었다.
데모를 한 친구의 어머니가 울고 간 날이면 때때로 가을비도 내려 홀로 핀 한 송이 들국화를 생각하며 살고 싶은 것은 진정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해는 지고 바람은 불어오고 사막의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죄 없는 푸른 별들이었다. 죄 없는 푸른 사람이었다.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정호승 시인 / 서울복음(福音) 1
서울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평화 있어라. 오늘도 쓸쓸한 봄풀을 바라보며 너희는 정성을 다하여 마음을 고요히 하라. 서울에는 진정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자가 아직 없나니 빈 들에 마른 풀 같은 너희는 이제 서울의 이름으로 봄밤을 흔들어 깨우라. 목마른 자가 물 마시는 꿈을 꾸다가 새벽에 깨어나서 더욱 목말라 하고 송장메뚜기 한 마리가 온 나라의 들풀을 갉아 먹고 혼자 웃나니 사람들이 뜯어 먹을 풀 한 포기 없는 서울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기다림이 있어라.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너희 손 안에 있고 오늘도 늙은 여인은 창가에 기대앉아 울고 있다. 너희는 불빛 하나 새지 않는 서울의 창문을 열고 봄밤에 가난한 사람의 눈물을 닦어라. 하늘의 별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 그해의 첫눈이 내리고 하늘의 별에게 또다시 슬픈 일이 생기면 그해의 봄눈이 내리나니 사랑할 수 있는 자만이 미워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는 자만이 사랑할 수 있나니 서울의 이름으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서울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사랑 있어라.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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