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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 일박(一泊)
겨울비가 내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낯선 어둠 속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 놓고 주머니마다 비집고 나오는 생활의 옷을 벗어 던지고 친근한 적막의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날이 새면 떠나가는 가슴을 파고들며 시간을 발길질하는 꿈 안으로 몇 줄기 겨울비가 따라와 발을 적셨다.
간간이 눈을 뜨는 밤, 바다가 목까지 차올라 출렁이고 있었다. 낯선 거울속을 허전히 더듬는 파도의 두 손. 밤새 전신으로 슬픈 무늬를 놓으며 파도는 내 잠과 꿈을 지키며 울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몇 가닥 아쉬움이 더운 언저리를 붙들고 엎디어 있는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우산도 없이 축축히 젖은 마음 떨며 사라진 어둠과 내 사랑의 일박을 감싼 낡은 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만 하나의 빛깔로, 문학사상사, 1987
신달자 시인 / 조춘(早春)
맑은 하늘에서 푸른 면도날이 떨어져 나의 어디를 스쳤을까 혀 끝을 내어미는 꽃나무처럼 나의 몸에 피가 맺히고 있다. 몰매를 맞아 허약해진 귀여 그치지 않는 초인종 소리에 방향도 찾지 못해 문(門)이라는 문(門)은 모두 열고 있는 봄날의 오후에.
봉헌문자, 현대문학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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