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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 / 대숲 바람소리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 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도라지꽃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풋보리밥 한 술 된장국 말아 먹고 지름댕기 팔랑팔랑 올해 네 나이 몇 살이더냐
도래샘도 띠앗집도 다 버리고 눈 오는 날 주재소 앞마당 전남반(班)으로 너는 열여섯 정신대 머릿수건을 쓰고 고목나무 뒤에 붙어 참매미처럼 희게 울더니
오끼나와 테니안 라바울 사이펀 그 어디쯤 흘러가 한 초롱 여름산 더윗술을 걸러 주며 여적 그 섬 기슭 혼자 폈느냐 내 어려선 막내고모 같던 종(鐘)꽃
도라지 너를 보면 삼한(三韓)적 맑은 하늘 이슬 내리는 소리 호궁(胡弓) 소리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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