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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수권 시인 / 대숲 바람소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4.

송수권 시인 / 대숲 바람소리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현을 넘어 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끄으름내, 몽당빗자루도 개터럭도 보리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지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대닢파리의 맑은 숨소리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도라지꽃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풋보리밥 한 술 된장국 말아 먹고

지름댕기 팔랑팔랑

올해 네 나이 몇 살이더냐

 

도래샘도 띠앗집도 다 버리고

눈 오는 날 주재소 앞마당 전남반(班)으로

너는 열여섯 정신대 머릿수건을 쓰고

고목나무 뒤에 붙어 참매미처럼 희게 울더니

 

오끼나와 테니안 라바울 사이펀

그 어디쯤 흘러가

한 초롱 여름산 더윗술을 걸러 주며

여적 그 섬 기슭 혼자 폈느냐

내 어려선 막내고모 같던 종(鐘)꽃

 

도라지 너를 보면

삼한(三韓)적 맑은 하늘

이슬 내리는 소리

호궁(胡弓) 소리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宋秀權, 1940.3.15 ~ 2016.4.4]시인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호는 평전(平田).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亞陶)』(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 (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1998. 시와시학사), 제10

시집 『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제1회 영랑시문학상(2003),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