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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시인 / 글씨 혹은 새떼
철새 도래지를 다녀온 날 밤 책을 읽다 글씨들이 새떼로 읽힌 적이 있다
사각의 책장 가득 까맣게 내려앉은 가창오리 떼 글씨들이 갈갈거리며 시끄럽더니 이리저리 헤엄치며 문장을 흐트러트리더니 내 헛기침소리에 놀랐는지 푸드득 수천수만의 비문으로 일시에 날아올랐다 자기들끼리 거대한 몸 붓으로 허공에 일필휘지 초서를 휘갈긴다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책장 속으로 다시 질서정연한 문장으로 내려앉았다 이상한 착시다 싶어 눈을 크게 뜨고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넘기자 다시 글씨들은 흔적 없이 날아가 버리고 하얗고 몽롱한 고요만 남아 있었다 책을 다 읽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가창오리 떼
철새 도래지를 다녀온 날 밤 나는 해독할 수 없는 새떼 한 권을 읽었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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