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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썩는 여자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 간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 방에다 가득 채우는 그녀의 머리에 끈끈한 음지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 간다 습기와 시멘트 냄새, 하수구의 악취, 그녀의 살가죽은 눅눅하고 퀴퀴하게 속으로부터 썩으면 곪고 있지만 아직 구멍이 난 것은 아니다 새끼들을 치고 부엌에 나타나 뻘뻘거리는 쥐며느리, 바퀴벌레, 그리마 축축한 벽지를 들고 일어나는 곰팡이와 그녀의 싸움은 결국 곰팡이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밤이면 관 속에 누워 있는 여자, 천장 위에 이사온 사람들이 못질하는 소리, 그녀는 조금씩 시체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발가락들은 헐어 진물을 흘리고 화장품은 더 이상 그녀의 주름살을 덮어 주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도 책을 읽는다 늙은 학자의 흰 수염처럼 하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책을 그러나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중얼대다 잠든다 컴컴한 문명 속의 이 문둥이 여자를 그 어디 햇볕 좋은 땅 위로 데려가 그녀의 머리에 끈끈하게 거머리처럼 자라난 음지식물들을 말려 죽여야 할까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아이쿠 사막
모두들 정치에 뒷덜미가 잡힌 채 끌려 다니는 아이쿠 사막에선 머리가 띵한 사람들이 독주를 들이키며 살아 간다 술에 고통을 절여 버린다 아이쿠 아이쿠 소리 끝없는 아이쿠 사막에선 미치고 싶거나 죽고 싶은 사람들이 구멍을 찾는다 구멍 속 수렁에 온몸을 쑤셔 넣는다 아이쿠 도처에 매음의 털 난 수렁이 널려 있는 아이쿠 사막에선 껍질에 곧잘 속는 사람들을 위해 낙타상인들이 포장 잘된 신기루표 물건들을 끌고 온다 큰 상인이 대자유인(大自由人)인 아이쿠 사막 긴 목마름의 낡은 변두리에선 궁한 모래쥐들이 우는 새끼들을 달래며 단비를 기다린다 연중강우량 1mm 아이쿠 사막에선 모래에 뿌리 박은 가시돋친 혀들이 선인장처럼 자라면서 뚱그런 철퇴모양 번쩍이는 해 아래 이글거린다 아이쿠 아이쿠 소리 끝나는 날 없어도 모두들 지옥은 딴 데 있다고 말한다.
灼晩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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