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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형렬 시인 / 블랙박스의 웃음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8.

고형렬 시인 / 블랙박스의 웃음

 

 

  혀 사이가 신음한다

  비대칭 유리들이 물결에 쌀랑거리는

  재앙의 지느러미들 활활 타는 붉은 블랙박스를

  껴안고, 놓지 않는 검은 유령의 아이들

  비장이 녹아내린다

  모든 문명과 언어와 빛은 거짓으로 판명되고 있다

  재로 뒤덮인 동쪽 지구의 회색

  이튿날도 그 이튿날 아침도 꿈이 아니다

  칼날의 빗방울 표창의 비산들이 횡행하는

  기이한 입자들이 도착하는 빛의 사투, 그 억제력

  일조분의 일조분의 일조분의 천억분의 일의 끝에서

  암흑이 되는 심장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발코니의 풍경은 갇혀 있다, 벌집은 돌이 된 채

  자비로운 금빛 태양의 태평양에서

  봄 아침 해가 춥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5월호 발표

 

 


 

고형렬 시인

1954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大靑峯 수박밭』, 『해청』, 『성에꽃 눈부처』,  『마당식사가 그립다』, 『사진리 大雪』,  『김포 운호가든집에서』,  『밤 미시령』,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장시 『리틀 보이』, 『붕(鵬)새』 등을 출간. 그밖의 저서로 장편산문 『은빛 물고기』,  동시집『빵 들고 자는 언니』, 산문집 『시 속에 꽃이 피었네』 등을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