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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승호 시인 / 어느 정신병자의 고독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8.

최승호 시인 / 어느 정신병자의 고독

 

 

그는 밖으로 나갈 때 방 안에서 문을 노크한다. 보다 넓게 폐쇄된 공간으로, 열리는 문을 그는 보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자, 노크할 권리있는 존재, 즉 인간임을 주장하기 위해 그는 노크한다. 그러나 과연 아귀지옥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릴 수 있는 지를 그는 늘 걱정하고 복면을 쓴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그는 너무 착하다. 남에게 조금도 해 끼치지 않으려고, 그는 문을 벽으로 만들어 놓고 똑, 똑, 똑, 섬세하게, 문을 노크한다. 그러니까 그는 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다. 그는 그렇게 혼자, 자물통 속 정신병원에서 죽어간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엘리베이터 속의 파리

 

 

썩어서도 거드름 피우는

그 놈들 코에 가 붙지 않고

하필 파리가 내 뺨에 붙었을 때

나는 죽은 꽁치들이 빽빽한 통조림 속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불쾌했다

내 안에서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손을 들어 파리를 쫓았다

그 동작이 늪수렁에 빠져 살려고 버둥거리는

허우적거림으로 비쳤을지 모르겠다 죽음에 둘러싸여

무력했지만 파리 쫓을 힘은 있었다

빌딩을 오르내리는 날개 없는 요일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올라가도 거대한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듯

함몰과 큰 추락에 대한 공포에 나는 떨고 있었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오징어 3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 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서울대학교와 同 대학원 졸업.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반딧불 보호구역』, 『눈사람』, 『여백』, 『그로테스크』, 『모래인간』 등과 산문집으로 『황금털 사자』, 『달마의 침묵』, 『물렁물렁한 책』 등과 그림책으로 『누가 웃었니?』, 『이상한 집』이 있음. 1982년 '오늘의 작가상', 1985년 '김수영문학상', 1990년 '이산문학상', 2000년 '대산문학상' 수상.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