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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 아버지의 눈물
끼니마다 감자꽃 메밀꽃만 따먹다가 고구마밭 고구마만 몰래 캐어먹다가 싸전 앞 가마더미 쌀알로 뒹굴다가 머슴들 찍어먹던 청소금이 되었다가 오징어배 떠나간 벼랑 끝에 남아 있는 흰 고무신 한 켤레 찾아 신고 걷다가 첫날밤 피 흘리던 보름달 빠져 죽은 우물 속에 무덤 속에 소나기로 퍼붓다가 숫돌 위에 내려앉아 푸른 낫을 갈다가 밤비 따라 한밤 내내 한강물에 빠지고 새벽 공동수돗가 빈 물통 속 담겼다가 사글셋집 양철지붕 우박으로 때리다가 지게꾼이 주워 피운 꽁초 위에 젖어 울며 한국은행 분수보다 먼저 솟아오르는 아들놈 총 들고 떠나간 바다.
슬픔이 기쁨에게, 창작과비평사, 1979
정호승 시인 / 어머니
호롱불 켜놓고 밤새워 콩나물 다듬으시던 어머니 날 새기가 무섭게 콩나물다라이 이고 나가 온양시장 모퉁이에서 밤이 늦도록 콩나물 파시다가 할머니 된 어머니 그 어머니 관도 없이 흙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쓰러져 세상을 버리셨다 손끝마다 눈을 떠서 아프던 까치눈도 고요히 눈을 감고 잠이 드셨다 일평생 밭 한 뙈기 논 한 마지기 없이 남의 집 배추밭도 잘도 잘 매시더니 배추 가시에 손 찔리며 뜨거운 뙤약볕에 포기마다 짚으로 잘도 싸매시더니 그 배추밭 너머 마을산 공동묘지 눈물도 없이 어머니 산 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누워서 흙속에 묻히셨다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와 산을 내려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 말씀 얘야, 돌과 쥐똥 아니면 곡식이라면 뭐든지 버리지 말아라
별들은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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