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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수권 시인 / 우리 나라 풀이름 외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9.

송수권 시인 / 우리 나라 풀이름 외기

 

 

봄날에 날풀들 돋아 오니 눈물난다

쇠뜨기풀 진드기풀 말똥가리풀 여우각시풀들

이 나라에 참으로 풀들의 이름은 많다

쑥부쟁이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꽃

물곶이 앉은뱅이 도둑놈각시풀들

조선총독부 식물도감을 펼치니

구황식(救荒食)의 풀들만도 백오십여 가지다

쌀 일천만 섬을 긁어가도 끄떡 없는 민족이라고

그것이 고려인의 기질이라고

나마무라 이시이가 서문에서 점잖게 게다짝을 끌고 나온다

나는 실제로 어렸을 때 보리 등겨에 토면(土麵)국수를 말아 먹고

북어처럼 배를 내밀고 죽은 늙은이를

마을 앞 당각에 내다버린 것을 본 일이 있었다

햄이나 치이즈 버터나 인스턴트 식품이면

뭐나 줄줄이 외워대는 어린놈에게

어서 방학이나 왔으면 싶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센인바리[천인침(千人針)]를 받으러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았듯이

나 또한 이 나라 산천을 떠돌며

어린것의 식물 표본을 도와주고 싶다.

쇠똥가리풀 진드기풀 말똥가리풀 여우각시풀들

이 나라에 참으로 풀들의 이름은 많다

쑥부쟁이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꽃

물곶이 앉은뱅이 도둑놈각시풀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우리들의 사랑 노래

 

 

남풍 불어 미루나무밭 물 푸는 소리 나거든

직녀여, 그대 산 아래 오두막 짓고

그 미루나무 가지들 몸을 굽혀 북쪽 산마루에까지

허옇게 허옇게 속잎새 날려 오는 날

나는 그곳에 초막을 짓세

하늘 두고 맹세한 우리들의 사랑……

철따라 부는 남풍과 북풍

남풍에 미루나무 속잎새들 몸을 굽혀 오거든

그대 오는 걸음새 내 마중 나가고

북풍에 미루나무 겉잎새들 팔팔거리며

남쪽으로 몸을 굽혀 가거든

직녀여, 그대 내 발걸음 마중 나오게

하늘 두고 맹세한 우리들의 사랑……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宋秀權, 1940.3.15 ~ 2016.4.4]시인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호는 평전(平田).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亞陶)』(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 (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1998. 시와시학사), 제10

시집 『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제1회 영랑시문학상(2003),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