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숙 시인 / 여섯 개의 점*
이 여섯 개의 점은 별자리도 아니죠. 그렇다고 어느 개울의 징검다리도 아니고 어느 파충류의 무늬도 아니죠. 이건 날개죠. 아침을 품은 가슴을 열어 보이죠. 날개는 책상다리로 앉아서 세상만을 구경하는 건 아니에요 굳이 따진다면 점자點字는 두드러기 성 문자애요.
이 여섯 개의 점들 속에는 온갖 대답들이 있죠. 활짝 편 날개로 군무를 시작하는 새떼들부터 봄의 목록들이 들어있죠. 이것은 이른바 한밤의 도서관이죠. 불을 켜지 않아도 되니 등화관제죠. 눈과 시력에도 지문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죠. 깃털을 비집고 자판을 클릭하고 보도블록 위에서 신호등불빛색깔을 찾죠. 캄캄한 것은 손쉽게 음악이 될 수 있어요. 엇박자의 발놀림, 날아오른 날갯짓은 잠든 것까지 들쳐 내죠 세상의 단단한 것을 녹이는 불놀이에요.
누구는 어둠의 문자라 하지만 점자는 활짝 편 날개거든요 가던 길 다시 되돌아오지도 가지도 않는, 날개들이예요.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가 맹인을 위해 고안한 6개의 알파벳 점자(點字) 체계
계간 『시와 세계』 2018년 여름호 발표
김인숙 시인 / 폭설
새해 첫 출근 날, 인사발령처럼 폭설이 왔다 눈은 치운다기보다 이쪽저쪽으로 주고받을 뿐 재난 영화를 떠올리는 현관 입구는 담담했다
폭설의 아침, 생크림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한 마리의 개미 같이 장화와 안전모를 쓰고 눈을 퍼내는 사람들 성능 좋은 제설차보다 반나절 햇볕이 더 길을 잘 치운다
눈을 옮기지도 못하고 질척거리는 정오를 지나가겠지만 차가 사라지고 문 닫힌 상가들로 멈춰버린 도시 폭설은 우주의 느린 시간 바쁜 지구의 시간을 식히려 밤새 퍼부었다 십 분이면 닿을 곳이 한 시간이나 걸리는 것도 태연하던 곳들이 기우뚱거리는 것도 모두 우주의 느릿한 시간의 결정이다
눈이 쌓이지 않은 전봇대에 붙은 중국집 스티커, ‘배달됩니까? 백설미용실 앞 짜장 곱빼기요’ 받지 않는 거짓말 같은 혼잣말 통화에 잊고 있던 허기가 폭설만큼 부풀려졌다
계간 『열린시학』 2019년 가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지하 시인 / 겨울 거울 1 외 4편 (0) | 2020.01.31 |
|---|---|
| 황지우 시인 / 지복한 틈 외 2편 (0) | 2020.01.31 |
| 신경림 시인 / 시골 큰집 외 2편 (0) | 2020.01.30 |
| 최승호 시인 / 주전자 외 1편 (0) | 2020.01.30 |
| 윤성택 시인 / 산동네의 밤 (0) | 2020.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