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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지복한 틈
비 오는 날이면, 아내 무릎을 베고 누워, 우리는 하염없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젤 좋아하는 노래는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는 동요이다.
그 방주(方舟) 속의 권태롭고 지겨운 시절이, 이제는 이 지상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지복한 틈이었다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라. 화엄(華嚴)의 넓은 세상. 들어가도, 들어가도, 가지고 나올 게 없는 액체의 나라.
나의 오물(汚物)을 지우는, 마침내 나를 지우는 바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 시인 / 초로(草露)와 같이
오 환생(幻生)을 꿈꾸며 새로 태어나고 싶은 물소리, 엿듣는 풀의 누선(淚腺)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이름을 부르며 살 뿐,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로다 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상(傷)한 촛불을 들고 그대이슬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고 싶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황지우 시인 / 파란만장
율도국에 가고 싶다 내 흉곽의 강안(江岸)을 깎는 파란만장(波瀾萬丈)
물결 하나가 수만 겹의 물결을 데리고 와서 나의 애간장 다 녹이는
조이고 쪼이는 내 몸뚱아리 빨래가 되고
오 빨래처럼 시신(屍身)으로 떠내려가도 저 율도국으로 흘러가고 싶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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