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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 / 임진강 오리떼
오는구나 잘들 오는구나 해마다 이맘 때면 저희들끼리 재잘거리며 훨훨 산을 넘어 강을 건너 임진강 너른 벌판에 털썩털썩 주저앉는구나.
와글와글 재잘재잘 와글와글 재잘재잘
함경도 낯익은 아바이 사투리같고 평안도 낯익은 에미나이 감자밭 감자 캐는 소리같고 내 살던 칠성문 밖 보통학교 하급반 시절 조선어독본 글 외는 소리같고
보통강이 얼면 보통강에 나가 썰매 끌며 얼음 끄는 소리
와글와글 재잘재잘 와글와글 재잘재잘
개성 뒷산을 넘어 임진강을 건너 해마다 이맘 때면 국경선도 휴전선도 귀쌈을 패버리고 오는구나 잘들 오는구나
한 철을 살다 훌쩍 떠날 아, 우리는 오리떼만도 못한 네 아비 내 어미 원통하게 살다 죽은 땅
(오리떼는 산비탈 등성이에 그림자를 떨구고 세찬 하늘 여울물 휘감던 날, 아배는 오리치를 놓으러 논으로 내려가고 나는 기다리던 아배 오지 않아 아배 버선목 뒤집어 시악이 나서 물어뜯던 날)
오는구나 잘들 오는구나 휴전선도 국경선도 밀어붙이고 귀쌈을 패버리고
아도, 창작과비평사, 1985
송수권 시인 / 자수(刺繡)
어머님 한 땀씩 놓아 가는 수틀 속에선 밤새도록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매운 선비 군자란 싹을 내듯 어느새 오동꽃도 시벙글었다 태사(太史)신과 꽃신이 달빛을 퍼 내는 북전계하 말없이 잠든 초당 한 채 그늘을 친 오동꽃 맑은 향 속에 누가 당음(唐音)을 소리 내어 읽고 있다 그려낸 먹붓 폄을 치듯 고운 색실 먹여 아뀌 틀면 어머님 한삼 소매 끝에 지는 눈물 오동잎새에 막 달이 어린다 한 잎새 미끄러뜨리면 한 잎새 받아 올리고 한 잎새 미끄러뜨리면 한 잎새 받아 올리고 스르릉스르릉 달도 거문고 소리 낸다 어머님 치마폭엔 한밤내 수부룩히 오동꽃만 쌓이고…….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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