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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디아블로(diablo)의 마법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1.

김백겸 시인 / 디아블로(diablo)의 마법

 

 

『시와 표현』으로부터 한국시인 고형렬과 베트남 시인 마이 반 펀의 공동시집 「대양(大洋)의 쌍둥이」 서평을 청탁 받고 원고 시작을 못해 전전긍긍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원고 시작을 못해 전전긍긍

MRI를 찍어보니 뇌에 나도 모르는 총알구멍이 숭숭 지나가 있는 육십대 중반의 뇌가 생각의 장작에 불을 지피지 못해 전전긍긍

 

어디로부터 재야 고수들의 회춘 처방을 가져오나

영화 「울프(Wolf)」에서 출판 편집인 잭 니콜슨이 늑대에게 물린 후 몸이 밤마다 늑대로 변신하면서 야생의 힘과 청춘을 회복하는 케이스가 있었는데

어떤 마법 늑대가 나를 깨물어서 늑대의 피로 내 몸을 회복시키나

인디언들이 디아블레로(diablero)라 부르는 흑마술사를 어디서 만나나

어떤 인연이 용설란 환각 마약 메스칼린(mescaline)을 안내자로 고용해서 내 정신을 프로메테우스의 불씨가 있는 올림푸스 산정으로 날아가게 하나

 

마법의 피가 내 몸을 불태운다면

내 정신은 수혈을 받은 드라큐라 백작처럼 무기력에서 부활하겠지

산불처럼 세력을 얻은 상상은 거대한 관념의 사막을 횡단해서 언어의 피라미드를 건설하겠지

문장은 나일강처럼 흘러 사막의 대지를 비옥한 오아시스로 만든 후 상징의 숲을 이룩하고 수사(修辭)의 꽃들을 피워내겠지

 

하지만 이십일세기 세종시의 아파트 단지에 늑대의 이빨과 피는 없고

디아블로(diablo)의 마법도 없고

「울프Wolf」의 잭 니콜슨이 직장 후배와 불륜을 벌인 아내를 버리고 출판사 회장의 상속녀 미셀 파이퍼와 야생의 신비로 맺어지는 인연도 없고

서평을 위해 골라놓은 시들은 메두사의 뱀 머리칼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고

저 시들한테 진다면 내 정신이 돌로 변할 것 같아

테세우스의 방패처럼 내 정신을 반들반들하게 닦느라 새벽같이 땀을 흘리고 있고

언어의 칼날을 숫돌에 벼리느라 심장의 땀을 흘리고 있고

 

무크 『세종시마루』 2019년 상반기호 발표

 

 


 

김백겸 시인

1953년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 『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기호의 고고학』, 『거울아, 거울아』와 시론집  시론집 『시적 환상과 표현의 불꽃에 갇힌 시와 시인들』,『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光源)』 등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主幹 역임. 현재 〈시힘〉, 〈화요문학〉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