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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경림 시인 / 씻김굿*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1.

신경림 시인 / 씻김굿*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꺾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밤도 낮도 없는 저승길 천리 만리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잠들라네

보리밭 풀밭 모래밭에 엎드려

피멍든 두 눈 억겁 년 뜨지 말고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잠들라네.

 

잡으라네 갈가리 찢긴 이 손으로

피묻은 저 손 따뜻이 잡으라네

햇빛 밝게 빛나고 새들 지저귀는

바람 다스운 새 날 찾아왔으니

잡으라네 찢긴 이 손으로 잡으라네.

 

꺾인 목 잘린 팔다리로는 나는 못 가,

피멍든 두 눈 고이는 못 감아,

못 잡아, 이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은 저 손을 나는 못 잡아.

 

되돌아왔네, 피멍든 눈 부릅뜨고 되돌아왔네,

꺾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하늘에 된서리 내리라 부드득 이빨 갈면서.

 

이 갈가리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은 저 손 나는 못 잡아,

골목길 장바닥 공장마당 도선장에

줄기찬 먹구름되어 되돌아왔네,

사나운 아우성되어 되돌아왔네.

 

* 씻김굿: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하는 굿으로, 원통한 넋을 위로해서 저 세상으로 편히 가게 하는 것이 목적임.

 

달넘세, 창작과비평사, 1985

 

 


 

 

신경림 시인 / 아우라지 뱃사공

 

 

산과 물이 지겨워 아우라지* 뱃사공의 아내는

제 아들딸을 두고 대처로 떠났다.

아우라지 뱃사공은 산과 물이 싫다.

산과 물을 좋아하는 대처 사람이 싫다.

종일 배를 건너 손에 쥐는

천 원 안팎의 돈 그것이 싫다.

세상이란 잘난 사람들끼리 그저

잘난놀음으로 돌아치는 곳,

그를 가엾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는 싫다.

딸애는 바람막이도 없는 난달에서

구호미를 삶아 저녁밥을 짓고

아들놈은 단칸 셋방 맨바닥에 엎드려

몽당연필로 제 어미에게 편지를 쓴다.

보낼 수도 없는 서러운 편지를.

아우라지 뱃사공은 그들을 보는 세상의 눈이 싫다.

정선아라리의 구성진 가락이 싫다.

 

* 아우라지: 정선읍에서 220여 Km 떨어진 나루로, `정선아라리' 에 많이 나오는 고장.

 

달넘세, 창작과비평사, 1985

 

 


 

 

신경림 시인 / 어둠으로 인하여

 

 

복사나무 노간주나무 아래

여자들이 울고 있다

 

잡목숲 넝쿨 사이 스쳐온 한숨

모랫벌에 뱃전에 부서지는 물소리

고샅에 디딜방앗간에

 

어둠이 엉겨 붙고 술렁이고

소용돌이치고 서로 부르고

 

원귀가 되어 잡귀가 되어

밤새껏 미친듯이 맴을 돌고

춤을 추고

 

여자들이 울고 있다

형제들을 부르고 있다

노간주나무 물푸레나무 아래

 

어둠으로 인하여

원통한 죽음들로 인하여

 

새재, 창작과비평사, 1979

 

 


 

신경림 시인

193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 이한직의 추천으로 월간 《문학예술》에 〈낯달〉1955. 12), 〈갈대〉(1956. 2), 〈석상〉(1956. 4)을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농무』, 『새재』, 『달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의 노래』, 『길』 등과 산문집 『민요기행 1·2』, 『강따라 아리랑 찾아』, 『시인을 찾아서』, 『낙타』 등이 있음.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