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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쥐치
연탄불에 굽은 쥐포들이 꿈지럭거린다 쥐포는 딱딱하고 방부제를 잔뜩 발라 놓았고 콧구멍도 없다 주둥이도 없고 혀도 없고 귀도 없다 눈도 없다 지느러미조차 없다 쥐치포는 쥐포일까 혹시 쥐고기를 얇게 썰어 붙인 게 아닐까 쥐치포를 보면서 집단적으로 벌거벗겨진 쥐치들을 생각한다 벌거벗은 채 철조망 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주둥이가 뾰로퉁한 아프리카 포로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개성이 없다 방패도 없다 발언권도 없다 칼도 없다 포로들은 엄중한 감시 속에 눈치나 보면서 앉아 있는 궁둥이를 고작 걸레로 가린 자들이다 쥐치포를 보면서 주둥이가 뾰로퉁한 쥐치들을 생각한다 불행의 포로, 불행의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이름 없는 숱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지하철 정거장의 노란 의자들
땅 속의 계단을 내려간다 어떤 죽음의 동굴을 내려가서 우리는 또 이렇게 붐비면서 망령들 속에 기다릴까 저승의 강가에 앉아 용선(龍船)을 기다릴까 춥고 찌들은 몽고족(蒙古族)의 얼굴로 …가 웅크린 채 앉아 있는 노란 의자 복권을 구겨 버리고 …이 앉아 기다리는 노란 의자 이 지하철 정거장이 뚜렷한 희망의 개찰구로 뻗어 있다면 저리도 시무룩한 얼굴들이 아니다 설레임조차 없는 기다림 멋장이 뚜장이 같은 광고판 이윽고 구식 제복을 입은 기관사를 따라 줄줄이 얼빠진 얼굴 가득한 열차는 온다 저승의 강을 건너는 용선(龍船)이 있다면 용선(龍船)이 있다면 용선(龍船)을 타고 영혼은 또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북적거리던 한 무리가 휑하니 떠나면 돌고드름과 돌의 떡잎과 돌기둥들이 자라나는 텅 빈 동굴만큼이나 썰렁한 지하철 정거장 계단을 스물 아홉 번 밟으면 스물 아홉 순간 늙는 줄 모르면서 마흔 계단을 밟으면 마흔 순간 죽어가는 줄 모르면서 어느새 또 찌들은 몽고족(蒙古族)의 얼굴로 계단을 내려와 …가 웅크린 채 앉아 있는 노란 의자 새로 산 복권을 들여다보며 …이 앉아 기다리는 노란 의자
灼晩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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