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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호승 시인 / 윤동주 무덤 앞에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

정호승 시인 / 윤동주 무덤 앞에서

 

 

이제는 조국이 울어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눈물을 흘렸으므로

이제는 한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마른 잎새들이 울어야 할 때다

 

이제는 조국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목숨을 버렸으므로

이제는 한 젊은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하늘과 바람과 별들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죽어서 사는 길을 홀로 걸어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던 사나이

무덤조차 한 점 부끄럼 없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사나이

 

오늘은 북간도 찬바람결에 서걱이다가

잠시 마른 풀잎으로 누웠다 일어나느니

저 푸른 겨울하늘 아래

한 송이 무덤으로 피어난 아름다움을 위하여

한 줄기 해란강은 말없이 흐른다

 

별들은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0

 

 


 

 

정호승 시인 / 이별노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나는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정호승 시인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새벽편지》 등이,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이, 어른이 읽는 동화로 《연인》《항아리》《모닥불》《기차 이야기》 등이, 산문집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