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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하림 시인 / 심연으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

최하림 시인 / 심연으로

 

 

참을 수 없이 환한 목소리로

깔깔거리고 줄달음치고 바자울을

넘나들면서 쿡쿡 소매를 잡아당긴다

소유할 수도 없고

불태울 수도 없는

내가 아닌 것들이

저렇듯 불처럼 빛난다

물 속에서 빛난다

무지개처럼 빛난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서 우리는 논다

말괄량이처럼 춤추며 물구나무서며, 우리가

사랑했던 아이가 우리를 힘껏 민다

안 돼! 안 돼! 안 돼!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말한다

처음의 그대가 꿈꾸었던

무지개 같은 말로, 나중엔

검은 재의 말로

 

그러나 말들은 심연으로 심연으로

돌처럼 갈앉는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어느 뫼를 걸어도 좋으리

 

 

슬픔이 얼비친 바다도 골목도 버리고

흙으로 돌아간 어메여 여름 물소리

흐르는 언덕에 누워 이제는 하늘을

보아도 좋으리 구름을 보아도 좋으리

갯비린내 자욱한 해안통을 돌아가는 그대

발자국마다 출렁거리던 파도 소리

들으며 우리가 돌아갈 길목에서

어떤 새 울음이나 풀바람으로

멍울진 가슴을 풀어 버리고

햇빛이 넘치는 어느 뫼를 걸어도

그 뫼의 그림자로 내려도 좋으리

 

작은 마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2

 

 


 

최하림[崔夏林,1939.3.7 ~ 2010,4.22]  시인

1939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貧弱한 올페의 回想〉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와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판화 시선집 『겨울꽃』, 자선 시집『침묵의 빛』 그리고 시전집 『최하림 시 전집』 등이 있음 그 밖에 미술 산문집 『한국인의 멋』, 김수영 평전『자유인의 초상』과 수필집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최하림 문학산책 『시인을 찾아서』 등을 펴냄. 제11회 이산문학상,

제5회 현대불교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분 최우수상 수상. 전남일보 논설위원, 서울예술대학 교수 역임. 2010년 간암으로 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