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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 시인 / 심연으로
참을 수 없이 환한 목소리로 깔깔거리고 줄달음치고 바자울을 넘나들면서 쿡쿡 소매를 잡아당긴다 소유할 수도 없고 불태울 수도 없는 내가 아닌 것들이 저렇듯 불처럼 빛난다 물 속에서 빛난다 무지개처럼 빛난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에서 우리는 논다 말괄량이처럼 춤추며 물구나무서며, 우리가 사랑했던 아이가 우리를 힘껏 민다 안 돼! 안 돼! 안 돼!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말한다 처음의 그대가 꿈꾸었던 무지개 같은 말로, 나중엔 검은 재의 말로
그러나 말들은 심연으로 심연으로 돌처럼 갈앉는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어느 뫼를 걸어도 좋으리
슬픔이 얼비친 바다도 골목도 버리고 흙으로 돌아간 어메여 여름 물소리 흐르는 언덕에 누워 이제는 하늘을 보아도 좋으리 구름을 보아도 좋으리 갯비린내 자욱한 해안통을 돌아가는 그대 발자국마다 출렁거리던 파도 소리 들으며 우리가 돌아갈 길목에서 어떤 새 울음이나 풀바람으로 멍울진 가슴을 풀어 버리고 햇빛이 넘치는 어느 뫼를 걸어도 그 뫼의 그림자로 내려도 좋으리
작은 마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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