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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용 시인 / 포란(抱卵)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

김신용 시인 / 포란(抱卵)

 

 

  한 여름 내내 마당을 밝히던 꽃나무도 꽃들을 덜구고 난 뒤, 잎들도 기진한 듯 축 늘어져 있어

  다가가 보니, 잎들마다 고치처럼 말려 말라가고 있다

  저것도 마름의 형식? 꽃나무 아래 떨어진 잎을 주워 펴보니

  그 속에도 마른 잎인 듯, 羽化가 벗어두고 간 허물이 후줄그레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저 말린 잎들은 벌레의 산실이었던 것

  알들의 방이었던 것

  자신을 고치처럼 도르르 만 것은, 나뭇잎의 포란의 몸짓이었던 것

 

  그것은 바구니에 담겨 강물을 떠내려가는 아기를 안아올리는 손길 같은 것이어서

  건너편 폐가도 잠시 환해 보인다. 저 빈집은 어떤 우화가 벗어두고 간것인지

 

  벌써 가을이 와, 자신의 떨어질 때를 알아

  그 잎으로 한 생의 집이 되어 준다면

  배추나방 같은, 보잘 것 없는 것의 비가림막이라도 되어 준다면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 마름이-

  落下가-

  허물이-

 

  그 말라가는 힘으로, 알의 침실이 되어 주기 위해 잎주먹을 꼬옥 쥐었다면

  물결주름 도르르 말린 잎으로, 촛불의 심지라도 돋우었다면

 

  이 가을을 潤落의 계절이 아니라 포란의 계절로 만들었다면

 

계간 『시작』 2008년 겨울호 발표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1988), 『개 같은 날들의 기록』(1990), 『몽유 속을 걷다』(1998), 『환상통』(2005), 『도장골 시편』 (2007),  『바자울에 기대다』(2011), 『잉어』(2013) 등과 장편소설『달은 어디에 있나 1,2』『기계 앵무새』 (1997), ‘『달은 어디에 있나 1. 2』 <고백을 이 제목으로 재출간> (2003), 『새를 아세요?』(2014)  등이 있음.  2005년 제7회 천상병문학상과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좋은시상과 같은 해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