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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 / 지리산 뻐꾹새
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 하(下)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 중(中) 저 연연(連連)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비로소 한 소리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 쪽 남해를 흘러 들어 남해 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 하(下)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細石)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징검다리
햇빛은 산과 들에 부드럽게 빛나고 물결은 풀어져 물방아는 쿵쿵 바둑이가 든 그림책 한 권을 잘도 넘기도 갔다 바둑이 대신 어머니는 자꾸 나를 부르시고…… 지금도 물방앗간 앞을 가로 지른 서른 몇 채의 어느 징검돌 위에 서서 나의 다릿심을 풀어 내느라 어머니는 손을 내밀고 서서 나를 부른다 아마 그때가 입학하던 첫날이었을 게다 물방아도 봄이 되자 더 힘을 내어 돌고 내 이웃의 소녀들처럼 뒷머리채를 흔들어대며 징검돌들은 흐젓이도 물 속에 처박혔었다 낄낄낄 웃음소리를 내고 도령아 이도령아 내 뒷머리채 못 밟아준 것도 죄지…… 이 날은 해가 꼴딱 지도록 어머니와 그 짓을 되풀이하여 내 다릿심이 반남아 풀리는 것을 보았다 팔짝, 팔짝, 쿵, 쿵, 물방아는 돌고 세월은 가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아주아주 슬픔에 발을 적시어 내가 영 일어서지 못하는 날은 조약돌 몇 개로 물낯바닥을 마구 흐려 놓고 어머니는 그 돌들 위에 서서 나를 부른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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