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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수권 시인 / 지리산 뻐꾹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3.

송수권 시인 / 지리산 뻐꾹새

 

 

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 하(下)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 중(中)

저 연연(連連)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비로소 한 소리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 쪽 남해를 흘러 들어

남해 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 하(下)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細石)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징검다리

 

 

햇빛은 산과 들에 부드럽게 빛나고

물결은 풀어져 물방아는 쿵쿵

바둑이가 든 그림책 한 권을 잘도 넘기도 갔다

바둑이 대신 어머니는 자꾸 나를 부르시고……

지금도 물방앗간 앞을 가로 지른 서른 몇 채의

어느 징검돌 위에 서서

나의 다릿심을 풀어 내느라

어머니는 손을 내밀고 서서 나를 부른다

아마 그때가 입학하던 첫날이었을 게다

물방아도 봄이 되자 더 힘을 내어 돌고

내 이웃의 소녀들처럼 뒷머리채를 흔들어대며

징검돌들은 흐젓이도 물 속에 처박혔었다

낄낄낄 웃음소리를 내고 도령아 이도령아

내 뒷머리채 못 밟아준 것도 죄지……

이 날은 해가 꼴딱 지도록 어머니와 그 짓을 되풀이하여

내 다릿심이 반남아 풀리는 것을 보았다

팔짝, 팔짝, 쿵, 쿵, 물방아는 돌고 세월은 가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아주아주 슬픔에 발을 적시어

내가 영 일어서지 못하는 날은

조약돌 몇 개로 물낯바닥을 마구 흐려 놓고

어머니는 그 돌들 위에 서서 나를 부른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宋秀權, 1940.3.15 ~ 2016.4.4]시인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호는 평전(平田).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亞陶)』(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 (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1998. 시와시학사), 제10

시집 『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제1회 영랑시문학상(2003),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