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용 시인 / 연(鳶)
추수도 끝낸 빈 들판에서 연을 날리는 사람을 본다 벌판의 갈대숲 사이에서 불쑥 말을 타고 나타난 사람만큼이나, 이채롭다 눈이, 텔레비전이나 구르는 바퀴들에만 익숙해져서 인지 하늘을 나는 연이, 구름의 정원을 걷는 듯 유유로워 보인다 바람의 길을 아는 이의 눈빛 같기도 하다 한껏 바람에 부풀리며 허공 높이 날아오르는 연 연은, 얼레에 감긴 실에 매달려 공중 높이 날고 있지만 그 연을 날리는 사람이, 연밭에서 蓮을 심는 사람 같다 蓮이 심겨지면, 오염된, 탁한 물도 맑게 걸러지는 그 淨化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 밭에 발을 담그고 연을 심는 모습을 닮은 저 연 날리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시커먼 기름에 덮인 서해 갯바위의 얼굴이 맑게 닦이는 것 같다 공중 높이, 그 허공의 꽃처럼 피어 있는 연 그 연(鳶)이 꼭, 연(蓮) 같다
그 蓮이 핀, 공중의 물빛이 시리도록 맑다
계간 『서시』 2011년 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백겸 시인 / 꽃들은 시간에 창백하게 말라가네 (0) | 2020.02.03 |
|---|---|
| 최하림 시인 / 어머니 곁에 누우면 외 1편 (0) | 2020.02.03 |
| 송수권 시인 / 지리산 뻐꾹새 외 1편 (0) | 2020.02.03 |
| 우원호 시인 / 군자삼락(君子三樂)* 외 1편 (0) | 2020.02.03 |
| 정호승 시인 / 짜장면을 먹으며 외 1편 (0) | 2020.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