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강기원 시인 / 비밀 정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3.

강기원 시인 / 비밀 정원

 

 

더러운 우리 속에서 뒹굴던 그는

그 넉넉한 살집 속에 아무도 모르게

꽃을 피워 놓고

낙엽을 떨구고

갈매기를 기르기도 합니다

 

불그레한 뺨 옆에 핀 꽃은

덩달아 분홍이요

갈매기 접은 날개는

언제 푸드득거릴지 모를 일이지요

 

허기진 이들이야 그저

꽃살, 낙엽살, 갈매기살, 항정살……

구워 먹기에 바쁘지만

그게 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비밀 정원이었던 셈입니다

 

누구나 비밀 한 뙈기쯤 깊은 살 속에 숨겨 놓고 있듯이

 

계간 『제3의 문학』 2019년 여름호 발표

 

 


 

 

강기원 시인 / 숨은그림찾기

 

 

물이 반쯤 담긴 컵 속에

그의 입술이 남아 있다

 

허수아비처럼 걸린 옷 속에

그의 팔이 조금 남아 있다

 

해바라기하던 흔들의자의 한쪽 다리

가만히 보니 흔들리던 그의 다리다

 

테 굵은 안경 속에

수심을 알 수 없던 그의 눈빛

 

분신 같던 검은 가방 속

웅크린 그림자가 담겨 있다

 

필사 노트 위 잘린 손가락 같은 펜

여전히 그의 냄새를 붙들고 있는 방 안

 

주인 잃은 손전화 벨 소리 아득히 울려온다

환청인 듯 아닌 듯

 

계간 『시인시대』 2019년 가을호 발표

 

 


 

강기원 시인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7년〈요셉보이스의 모자〉외 4편으로 《작가세계》신인문학상 당선. 2014년〈쌍봉낙타〉외 1편 《동시마중》에 발표하며 동시 작품활동 시작.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바다로 가득 찬 책』,『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지중해의 피』와 시화집 『내안의 붉은 사막』, 동시집 『토마토개구리』, 『눈치보는 넙치』, 『지느러미 달린 책』 출간. 2006년 제2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