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권민경 시인 / 무게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4.

권민경 시인 / 무게

 

 

나는 더 마르고 고통스런 사람 되고 있다

숲에서 사막으로 넘어왔다

식물이자 동물

그래서 이렇다 엄마는 날 이상한 걸로 낳고 싶지 않았지 보통으로 키우고 싶었고

사줬어 책, check

그게 내 숲

죽은 나무들이었지만

누군가 거기 있었다는 증거

나는 골방에서 매일 뚱뚱해졌는데

정점 이후엔 말라가는

마르다가 소멸되는

과거가, 과거로 인해 괴로운 현재가

그리고 미래?

흥미롭지 내일은 희망 같은 게 아니다

겨우 그게 아니야

잘못 태어난

돌연변이가 결국 생태계의 승자가 되는 걸 목격하는 일

…승자가 어디 있나 패자는 어디 있어

지금은 사라진 것?

훗날을 도모하는 것?

말고

흥미롭다

흥미로워

잎사귀는 날 강하게 하는지 생존시키는지 나는 점점 말라가는데

나무 공룡 고사리 초기 포유류 따위

아무리 고사(枯死)를 예고해도

진화는 예측 불가능한

거 봐 내 말이 맞지?

말한 것이 이루어지면 잘난 척하는 것이 특기

세상을 내 크기만큼 이해하고 1256g

1256ml

뇌의 용량

인간 말이나 쓰는 주제에

모든 언어 흘러간다

모든 터럭 흘러간다

 

엄마는 꼬리뼈가 남아 있다

그걸 내게 물려주지 않았어

자꾸 말꼬리를 늘인다

지방을 머금은 줄기

날씨 고도 지나온 근육

위도와 경도 내가 물려받은 것들

check it out

사막 아니다 고산

불쑥 불쑥 솟아나

열대우림부터 냉대기후까지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물고기처럼 우는 일

새처럼 부는 일

물방울을 방어하는 깃털

보송하다 기분

나는 내 몸 주위를 걷는다

서성인다

그게

1,

일생이다

 

계간 『모:든시』 2019년 여름호 발표

 

 


 

권민경 시인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문학동네, 201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