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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 / 춘향이 생각
앞산머리 자주빛 구름 옥색빛이 섞갈려 휘돌더니 그 빛 연한 솔잎마다 그늘지는 소리 산봉우리들도 수런수런 잔기침을 놓아 보기 좋은 달 하나 해산(解産)하고 몸을 푼다.
선한 눈, 코, 입, 짙은 숱, 눈썹 처음 눈 맞춘 죄로 옥사장 큰 칼을 쓰고 창틀을 넘어다볼 줄이야!
진개내 앞냇가에 개가 짖어 개가 짖어 은장도 날을 갈아 눈물에 띄운 달하
귀기서린 앞산 그리메 밤부엉이 울어쌓는데 구리 동전 녹슨 상평통보 몇 바리쯤 동헌 마루에 져다 부려야 이 몸 하나 평안하겠느냐? 평안하겠느냐?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평사리행(平沙里行)
평사리의 섣달 어두운 하늘에 떠서 갈갈 울고 오는 기러기떼 쓸쓸한 바람 따라 이 들녘 끝 일렬횡대로 내리는 것 보니 그날, 봉준의 서상대(書床臺) 위에 떨어진 육효점괘 한번 보는 듯하군
진 날 갠 날 마른 땅을 골라 언제고 태평한 세월 평사낙안(平沙落雁)이야 따로 있었을까마는 이곳 촌로(村老)들의 말에 따르면 육효점괘 하나는 늘 입성이 나 경천, 경천을 조심하라고 그래서 봉준은 공주성을 칠 때도 노상 비실거리며 경천점(敬天店)을 겉돌기만 했던가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십이월 막소금 같은 눈발에 쫓기어 오다 피로리(避老里)의 한 주막집에 들러 그 경천(敬天)에게 참말 목을 졸릴 줄이야 피로리(避老里) 또한 피로하게 작부나 얻어 끼고 한세상 목마른 술이나 얻어 마실 땅인 것을
오늘 평사리 이 넉넉한 들을 빠져 나오며 역사는 이긴 자의 힘이고 패배자의 군소리라는 것을 저 들녘 끝 떠도는 쓸쓸한 바람이 일러 주었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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