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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하림 시인 / 우리는 손잡고, 기다리고 있었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5.

최하림 시인 / 우리는 손잡고, 기다리고 있었네

 

 

집과 무덤 사이

나는 살고, 숨쉬고,

꿈처럼 본다, 하늘에서

요란스레 꽃들이 피고,

피가 흐르고, 천사들이 나팔 불고,

진압군이 몰려온다, 거리가 구부러지고

무너지면서, 심장이 터질 듯한 나는,

얼마나 손잡고, 웃고 있는가, 땀 흘리고

있는가, 고요히, 플라타너스 푸른 이파리 새로

몰려오는, 이것은 플라타너스, 이것은 최루탄,

이것은 민주주의, 이것은 방패, 하면서,

일렁이는 햇빛의 파도 속에서

흐르는 육체의 신선함으로,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우리들은 무엇인가

 

 

칼날의 댓닢이 밤에도 자지 않고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다 달빛의

신경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다

여기저기 떼몰려 가고 있는 아우성을

들으며 유배의 꿈을 부르는 우리들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무서운 칼날이고

무서운 칼날이고 무서운 칼날이 아닌가

밤의 히어로같이 한걸음 한걸음

가슴과 목덜미 눈과 입술가로

부정의 손을 쓰면서

무서운 칼이여

잠든 지방을 흔들어라

번쩍이는 날로 사방을 베어라

우리나라의 대밭에는 말 못할 소리가 내려 있고

부정의 울부짖음이 있고

우리들은 우리의 무뢰배처럼

억새풀 속에서 억새가 자라나고

주민들 속에서 주민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있다

뒤숭숭한 잠결에도 그들이 떨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들을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1976

 

 


 

최하림[崔夏林,1939.3.7 ~ 2010,4.22]  시인

1939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貧弱한 올페의 回想〉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와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판화 시선집 『겨울꽃』, 자선 시집『침묵의 빛』 그리고 시전집 『최하림 시 전집』 등이 있음 그 밖에 미술 산문집 『한국인의 멋』, 김수영 평전『자유인의 초상』과 수필집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최하림 문학산책 『시인을 찾아서』 등을 펴냄. 제11회 이산문학상,

제5회 현대불교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분 최우수상 수상. 전남일보 논설위원, 서울예술대학 교수 역임. 2010년 간암으로 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