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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 시인 / 우리는 손잡고, 기다리고 있었네
집과 무덤 사이 나는 살고, 숨쉬고, 꿈처럼 본다, 하늘에서 요란스레 꽃들이 피고, 피가 흐르고, 천사들이 나팔 불고, 진압군이 몰려온다, 거리가 구부러지고 무너지면서, 심장이 터질 듯한 나는, 얼마나 손잡고, 웃고 있는가, 땀 흘리고 있는가, 고요히, 플라타너스 푸른 이파리 새로 몰려오는, 이것은 플라타너스, 이것은 최루탄, 이것은 민주주의, 이것은 방패, 하면서, 일렁이는 햇빛의 파도 속에서 흐르는 육체의 신선함으로,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우리들은 무엇인가
칼날의 댓닢이 밤에도 자지 않고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다 달빛의 신경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다 여기저기 떼몰려 가고 있는 아우성을 들으며 유배의 꿈을 부르는 우리들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무서운 칼날이고 무서운 칼날이고 무서운 칼날이 아닌가 밤의 히어로같이 한걸음 한걸음 가슴과 목덜미 눈과 입술가로 부정의 손을 쓰면서 무서운 칼이여 잠든 지방을 흔들어라 번쩍이는 날로 사방을 베어라 우리나라의 대밭에는 말 못할 소리가 내려 있고 부정의 울부짖음이 있고 우리들은 우리의 무뢰배처럼 억새풀 속에서 억새가 자라나고 주민들 속에서 주민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있다 뒤숭숭한 잠결에도 그들이 떨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들을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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