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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 휴전선에서
하늘이 무너질 때까지 너를 기다렸다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엎드려 하늘이 무너지고 눈이 내릴 때까지 너를 사랑했다
눈물 없이 꽃을 바라볼 수 없고 눈물 없이 별들을 바라볼 수 없어 흩어졌던 산안개가 다시 흩어질 때까지 죽어서 사는 길만 걸어서 왔다
녹슨 철조망 사이로 청둥오리떼들은 말없이 날아갔다 돌아오고 산과 산은 이어지고 강과 강은 흘러 흘러
누가 내 가슴속 푸른 하늘을 빼앗아갔을지라도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 별들을 조용히 흔들어보았다
별들은 따뜻하다, 창작과비평사, 1990
정호승 시인 /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서울의 예수, 민음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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