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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시인 / 공해시 1
오늘 내리는 이 눈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이 눈이 그대의 집을 덮고 식구들을 덮고 마침내 그대의 육신과 잠마저 덮쳐 버린다면 아무도 눈을 아름답다 하지 않으리 온 세상을 덮고 발목 빠지는 눈이 말세처럼 차창 밖에도 간판에도 단말마 쏟아지는 이 눈발 속에 핵먼지가 끼여 있다면 눈사람의 흰둥이와 빨갱이 우리들 달디단 입맞춤에도 수은독이 묻어 있다면 날큼한 침처럼 진땀을 쥐며 헤어지는 우리들의 따스한 악수에도 이따이이따이 뼈가 녹고 있다면 우리들 서로 그리움에도 껍질처럼 납가루가 묻어 있다면 겨울 쓸쓸한 뜨락에서 축축히 젖는 눈망울에 농약이 뭍어 있다면 그대 우리들이 마시는 음료수와 우리들이 나들이하는 교통수단과 입 헤벌린 구두창과 주욱죽 내리는 산성비 잠들고 싶은 베갯잇에조차 아황산까스가 묻어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다시 만나 사랑하겠지만 징그럽겠지만 식초처럼 축 늘어진 육신과 살점이 녹은 액체로 흘러흘러서 허우적거리며 뼈가 드러난 팔다리로 그대를 껴안겠지만 갈비뼈는 갈비뼈끼리 백태깔은 까뒤집힌 채 곰배팔이도 끼리끼리 다만 눈물겹게 독하디독한 참사랑 오른팔 짤라 보낸 하느님처럼 에미애비보다 지지리 못난 자식 처절 복수로 키워 강대국이 우리를 죽여서 죽여 말살하더라도 우리 죽어도 죽어줄 수 없겠지만 징그러운 그러나 진하디진한 사랑으로 살겠지만 억센 희망 곁에서 시커먼 공장폐수가 흘러 간다면 피피엠이 뭔지 모르지만 우리들 목숨과 사랑과 삶과 죽음과 미래를 위한 공동체 하다못해 오늘날 느그들의 선거공약도 헛된 독재와 같이 산업재해 인명살상의 피가 묻어 있다면 오늘도 주룩주룩 산성비 내리고
좋은 꽃, 민음사, 1985
김정환 시인 / 공해시 2
밥솥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휴전선 혹은 동두천에서 몇 십년 흐른 세월 철조망 밑 녹슬은 철모처럼 철마는 달리고 싶고 밥솥 녹슬은 우리들의 밥솥이다 바닥을 이토록 갉아댄 이물질(異物質)은 우리들의 내장도 이렇게 갉았으리 밥솥 바닥을 갉고 내장바닥을 갉고 우리들 번식의 요도를 갉고 우리들 그리움의 목청을 갉고 아아 우리들 맑은 정신의 뇌세포까지 갉았으리 어떤 자가 독을 밥이라고 하는가 그리 참으며 우리는 밥을 먹고 살았다 독을 먹고 독을 품기 위하여 어떤 자가 수은을 우리들 생명의 식수라고 하는가 그리 참으며 우리는 물을 마시고 살았다 중금속 섞인 식민지 우리들의 식사 매판자본의 시대 때려 부수기 위하여 어떤 자가 도대체 어떤 자가 이 피눈물 나는 고물철기시대를 선진조국 참된 미래라고 하는가 뻔뻔스런 밥솥 뻔뻔스런 우리들의 위장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떤 자가 우리를
선량한 백성이라고 일러바치는가 선량한 백성이라고 일러바치는가……?
좋은 꽃, 민음사, 1985
김정환 시인 / 공해시 3
너희들이 화려한 토요일밤 텔레비 투나잇 쇼를 볼 때 매끈한 허벅지와 서구식 가랭이 벌리는 식민지 가여운 무희들의 광란하는 율동을 볼 때 너희들이 킬킬거리는 요정기생의 허벅지를 베고 또다시 무료한 삶과 장미빛 인생에 대해 양줏잔을 들 때 우리들의 삶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들의 허리 졸린 식구들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들의 허벅지는 온통 고름투성의 쇠파리 끓고 너희들의 정액이 느믈덕지 묻은 쓰레기 배설물 처리장이 아니다 우리들의 넓적다리는 핵먼지 묻어 음흉한 버섯꽃 피는 제국주의 차마 눈뜨고 못 볼 구석이 아니다 우리들의 왕 피부병은 아니다 너희들의 뇌리에 뇌리의 사지에 고문틀 압핀으로 꽂힐 치열한 사랑이다 싸움이다 너희들이 온갖 영화와 부귀와 고층건물에 대해 꿈꾸고 있을 때 임대료를 계산하고 있을 때 우리들의 두 다리는 너희들의 죄값이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 돌아오게 만드는 고통의 다리 남북 분단의 다리 너희들이 헐벗고 비천한 우리들을 경멸할 때 고름투성이 다리 우리들의 젖은 육신은 무서운 전염병이다 찬란한 그리움의 뼈대 헤어져 버팅기는 남북통일의 뼈대 식민지 거간이여 거간꾼들이여 그대 우리들 순결한 몸을 팔아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이루었는가 서럽고 휘황한 우리들의 도시? 화장품 내음 풍기는 우리들의 병든 고향? 그대 불쌍한 그대들이여 우리들의 대물린 땅과 인간된 권리를 짓밟고 그대들은 헛된 정신까지 팔아먹고
골빈 껍데기마냥 어느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가?
좋은 꽃, 민음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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