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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수권 시인 / 해빙기(解氷期)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6.

송수권 시인 / 해빙기(解氷期)

 

 

며칠째 쌓이던 눈이

다시 녹으면서

대성동(大成洞) 마을 움집들의 추녀 끝을 둘러

고드름발을 쳤다.

 

우리 고숙(姑叔)은

삼동(三冬)내 눈사태 속을 흐르는

물소리도 싫어지고

마른 산약(山藥) 뿌리를 다듬으며

달장깐이나 막힌 화개(花開)장길이 못내 서운타.

 

지리산(智異山)을 겉돌면서 살아온

고숙의 한평생

이 봄은 심메마니 어린 싹이라도 볼까

삼동(三冬) 허연 꿈 속에서도 만나지는 떡애기.

아장아장 걸어오는 부리시리 산삼

한 뿌리라도 만나질까.

 

유마경(維摩經) 한 구절 같은 햇빛 하나가

고드름발에 엉기면서

지리산(智異山)일대의 산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왔다.

 

산맥들이 풀리면서 돌아가는

엇둘 엇둘 소리…….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향전매(梅)

 

 

유도화(柳桃花)가 만발하여

제주도의 여름은 서늘하더니

어느덧 풍설 속에 향전매* 한 그루 피어

그 향기 물길 천 리를 타고 간다.

 

애랑아 이 겨울날

너는 어디에 나비같이 숨었느냐

너를 찾아 해변 곳곳 마을 다 뒤져도

불 같은 사랑 퍼부을 계집 하나 없더니

 

정분으로 말하면 이 세상 마지막

내 시린 이빨 네 쪽집게로 모두 뽑아 놓고

닛뮤윰 하나로 사랑한다 사랑한다

네 입술 위에 찍고 싶었는데

 

비장놈들 줄줄이 허리에 꿰차고

한번 뭍으로 가선 소식 없던 너

이젠 금니빨 몇 섬이나 짊어지고 와

저 모슬포 쪽 바다에 뿌려대며

동박숲에서 지저귀는 동박새가 되어 우느냐.

 

나는 향전매 독한 향기에 코피를 쏟으며

천년을 살아 도는 장승이 되어

너를 찾아 눈발 속을 헤매는데

애랑아 이 겨울날

너는 어디에 나비같이 숨었느냐.

 

* 향전매: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매화로 눈 속에서 봄을 알리는 꽃.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宋秀權, 1940.3.15 ~ 2016.4.4]시인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호는 평전(平田).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亞陶)』(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 (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1998. 시와시학사), 제10

시집 『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제1회 영랑시문학상(2003),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