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신경림 시인 / 철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7.

신경림 시인 / 철길

 

 

내 형제들의 피를 빨고

땀을 짜서 놓은 철길을 타고 가서

구경하는 금강산은 아름다울까

내 친구들의 졸라맨 허리와

앙상한 갈비뼈를 짓밟은 발들과 나란히

밟아보는 북녘 들판은 부드러울까

내 이웃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피묻은 손에 이끌려

잡아보는 동포들의 손은 따스할까

 

길, 창작과비평사, 1990

 

 


 

 

신경림 시인 / 파도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저 바다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으니.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저 파도 일제히 일어나

아우성치고 덤벼드는 것 보면.

얼마나 신바람나는 일인가

그 성난 물결 단번에

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

씻어내리리 생각하면.

 

길, 창작과비평사, 1990

 

 


 

 

신경림 시인 /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농무, 창작과비평사, 1975

 

 


 

신경림 시인

193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 이한직의 추천으로 월간 《문학예술》에 〈낯달〉1955. 12), 〈갈대〉(1956. 2), 〈석상〉(1956. 4)을 발표하며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농무』, 『새재』, 『달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의 노래』, 『길』 등과 산문집 『민요기행 1·2』, 『강따라 아리랑 찾아』, 『시인을 찾아서』, 『낙타』 등이 있음.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