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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 철길
내 형제들의 피를 빨고 땀을 짜서 놓은 철길을 타고 가서 구경하는 금강산은 아름다울까 내 친구들의 졸라맨 허리와 앙상한 갈비뼈를 짓밟은 발들과 나란히 밟아보는 북녘 들판은 부드러울까 내 이웃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피묻은 손에 이끌려 잡아보는 동포들의 손은 따스할까
길, 창작과비평사, 1990
신경림 시인 / 파도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저 바다 언제까지나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으니.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저 파도 일제히 일어나 아우성치고 덤벼드는 것 보면. 얼마나 신바람나는 일인가 그 성난 물결 단번에 이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 씻어내리리 생각하면.
길, 창작과비평사, 1990
신경림 시인 /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농무, 창작과비평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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