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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 김선생의 분재
연말정리를 하다 교무실 창 밖을 바라본다 모과나무 숲 사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해사한 얼굴 위에 겨울 햇살이 매끄럽다 김선생은 철쭉 한 그루를 화분에 옮겨 심고 가지마다 굵은 철사를 동여매어 꺾이지 않을 만큼 이리 비틀고 저리 틀어 비는 시간마다 분재를 만든다 모두들 모여 서서 잘 되었다 잘 되었다고 한다 이 달이 가면 또 한 해가 저문다 모두들 잘 되었다 잘 되었다 할 것이다 모과나무 사이에서 쏟아질 듯 웃던 아이들을 급하게 불러들이는 종소리가 울려온다.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86
도종환 시인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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