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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하림 시인 / 저녁 그림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8.

최하림 시인 / 저녁 그림자

 

 

여섯일곱살 때 바다에는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열여섯살 때도 열입곱살 때도 바다에는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반고비 넘은 어느 날에도 갈매기들은 유리창 밖의 어린 모과 나무 새에서 반투명체로 꽃들을 조으다가 마주 보다가 날개를 푸드득이다가 이윽고 먼 수평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늙어서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곳에는 저녁 그림자가 인간의 슬픔처럼 조용히 그늘을 드리우고 있을 것이다.

 

작은 마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2

 

 


 

 

최하림 시인 / 저녁 바다와 아침 바다

 

 

광산촌의 여인은 보고 있었다 물에 뜬 붉은 바다

날빛 새들이 날아오르고 물결에 별들이

씻겨져 제 모습으로 갈앉고

상수리나무가 한 그루 흔들리고 있었다

키작은 사내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일천 피트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으나

가도가도 막막한 어둠뿐 모두 다 뜨내기와 갈보뿐

낡아빠진 궤도차가 달리는 길목에서

어허와어허와 궤도차가 달리는 길목에서

우리들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젓가락을 두들기며 노래

불렀으나, 신참내기 전도사도 노래불렀으나 가슴의

멍울은 풀리지 않고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슬픔만 달빛이 내리는

나무 그늘이라든가 산등에서 아주 낮게

흘러내리고 어떤 적의도 없이 흘러내리고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새들 무리가 무의미하게 날아오르고

물결에 흔들리는 여인의 얼굴 위로

상수리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2

 

 


 

최하림[崔夏林,1939.3.7 ~ 2010,4.22]  시인

1939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貧弱한 올페의 回想〉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와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판화 시선집 『겨울꽃』, 자선 시집『침묵의 빛』 그리고 시전집 『최하림 시 전집』 등이 있음 그 밖에 미술 산문집 『한국인의 멋』, 김수영 평전『자유인의 초상』과 수필집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최하림 문학산책 『시인을 찾아서』 등을 펴냄. 제11회 이산문학상,

제5회 현대불교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분 최우수상 수상. 전남일보 논설위원, 서울예술대학 교수 역임. 2010년 간암으로 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