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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시인 / 닭집에서
닭 한 마리 발을 벌린 채 기름 속에 펄펄 끓는 동안 이상히도 고요한 밤하늘 바라보며 아내와 나는 우리네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을 한다 닭은 한 마리에 2천5백 원 하늘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노점상 천막들 사이로 바람이 불고 흔들리는 하늘에 별이 몇 개 간신히 반짝인다 아내와 나는 잠시 그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닭집 여편네는 임신중 백열등 빛이 질펀하게 흐르는 시장바닥 그녀는 칼솜씨 하나로 닭 모가지를 싹둑싹둑 자르며 피에 범벅진 손으로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우리는 또 잠시 소스라쳤지만 뱃속의 피에 또 엉겨 있을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서 자기를 낳아준 백정어미를 탓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그녀의 당당한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아니 그 표정에 섞인 어떤 안간힘 속에서 읽을 수 있다 바닥에 흩뿌려진 닭 내장 비린내 닭이 죽어 그녀의 아이를 살리지 않는다면 그 칼은 언제라도 우리를 찌를 수 있다 우리가 별을 보고 있는 순간에도 칼은 무참하게 닭 배때기를 찌르고 아내와 나는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을 상관없이 한다 질펀한 시장바닥을 흘러가는 백열등 빛 머리에 두른 수건에 묻은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별은 이제 하나도 안 보였지만 나는 그 여편네와 우리네 사이에 어떤 인연처럼 끈끈한(혹시 핏덩이 같은) 그 무엇이 치밀어 우리들을 맺고 있음을 백열등 불빛밖에 남은 것 없어도 알아차릴 수 있다 증오이거나 사랑이거나 소매 스치는 인연이거나 닭 배때기를 함께 찌르는 목숨의 뜻이거나
지울 수 없는 노래, 창작과비평사, 1982
김정환 시인 / 도둑고양이의 죽음 5
대열의 뒷무리를 이룬 자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들이 그 모든 제국의 군대를 타파해야 함은 그 모든 우리들의 노예근성을 우리들이 스스로 뿌리째 뽑아내기 위함이며 우리들이 그 모든 반동정치가들을 쓸어내야 하는 것은 그 모든 우리들의 봉건잔재를 우리들이 스스로 뿌리째 말살하기 위함이며 우리들이 그 모든 자본가를 타파해야 하는 것은 그 모든 우리들의 불평등을 우리들이 스스로 제거하기 위함이다 동참하라, 이 해방의 대열에! 우리들의 노래는 비록 친근하지 않지만 결코 증오의 노래가 아니다 우리들의 노래는 비록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가난의 노래가 아니다 우리들의 노래는 비록 슬프지 않지만 결코 파괴의 노래가 아니다 동참하라 이 해방의 대열에! 동참하라 이 투쟁과 건설의 대열에! 갈쿠리 손 농민도 낫을 들고 대열에 동참하라 각목 정강이 철거민도 부삽을 들고 대열에 동참하라 울혈 가슴 학생도 짱돌을 들고 대열에 동참하라 백지장 얼굴 지식인도 펜대를 들고 대열에 동참하라 보다 진보한 경제와 보다 진보한 정치와 보다 진보한 도덕을 염원하는 자는 모두 보다 진보한 미래세상을 염원하는 자는 모두 아아 영원하고 아름다운 평화를 염원하는 자는 모두 동참하라 동참하라 우리 가진 것을 모두 모아 이 어둠을 쓸어내고 스스로 찬란한 우리들의 세상으로 우뚝 서자 우리 가진 것을 모두 모아 새 나라의 빛을 빚어내자
우리 노동자, 동광출판사, 1989
김정환 시인 / 맞아죽을 노래
그래 아프다 네가 아프다 발길질하는 내 허리 내 갈비 내 척추뼈 마디마다 혁명의 골수까지 사무치고 쑤시고 다시 아프다
전신이 관절염으로 울어도 그러나 문제는 역시 사랑 미워하면 만나도 아프지 않고 미움은 아무것도 비롯하게 하지 못한다 맞아도 맞아도 내 아픔은 미워할 줄 모르고 뭇 세상 아픔의 배만 만삭이 된다 짓이겨 터질 탄생의 그날까지 그래 아프다
미움으로 아프지 않고 사랑으로 아프다
좋은 꽃, 민음사, 1985
김정환 시인 / 모가지의 노래
통과했을까 나는 다시 들었다 봄날에 두려움을 찢고 아름다움을 찢는 꽹과리 소리 깽맥깽맥깽맥깽맥 캥캐캐캥캥캐캐캥! 봄날 봄언덕 풀밭에서 보았다 교정을 꽹과리 캥맥캥 소리에 너희들이 가슴 설레며 모이고 모여서 마침내 시대의 장관을 이루는 것을 아지랑이 언덕 소나무 가지 위에 목을 매단 채 머리 풀고 맨문에 땡볕 받으며 바라보았다 눈부셔 신비한 꽹과리 소리는 하늘을 찢으며 저도 찢어져내릴 듯 그러나 너희들은 모였다 깽맥캥 깽맥캥 잔치굿판도 깽맥캥 망나니춤도 깽맥캥 그 소리는 오늘도 불현듯 두근거리며 아지못할 두려움의 정체도 두근거리고 백일하에 흩뿌린 속창자, 내팽개친 죽음의 깃폭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사람 한둘이 아니라 아아 우리 전부가 이렇게 인산인해를 이루고 모이고 함께 흘러서 깽맥캥 깽맥캥 깽맥캥 깽맥캥 이 찬란한 대낮 같은 자유를 외친다 다시 살아 바윗덩어리에 엉덩이를 기댄 착각 그러나 죽어서 이미 너희들의 피묻은 미래 이제 군화발에 짓밟혀 너희들은 다시 흩어지리라 끌려 가리라 괜찮다 통곡하지 마라 너희들의 죄가 아니다 간직해다오 그 사소한 살아 있음의 두려움 속에 맨주먹 외치는 목젖 터지는 가슴 깊숙히 산맥과 마을 어깨동무 출렁임 그 드높이 하늘과 바다 깽맥캥 깽맥캥 깽깽맥캥 캥캥 깽맥깽맥캥캥 오늘의 이 피가 피를 부르는 두려운 두려운 삶의 떨림 그 소리의 분노와 환희와 설움과 해방을 헤어져 있어도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도록 갇혀서도 항상 자유로울 수 있도록 우리 언제나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좋은 꽃, 민음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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