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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상 시인 /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볼펜
사라예보 탄피로 만든 볼펜이 있다
노천카페에 앉아 밥을 먹던 사람끼리 웃고 떠들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 볼펜이 정말 사람을 죽이고 남은 조각일까 멋진 황동 펜을 들고 있다가 공항 검색대에 걸렸다
볼펜이 빠져나간 손을 펴본다 여전히 위험하다는 걸까
흰 테이블보 위로 난처한 것들이 매일 쏟아졌다
사라예보는 깊고도 깊은 벙커
나는 테이블보를 표백제에 담근 채 하수구 밑으로 빠져나가는 속보들을 지켜보았다
장마가 이어지는 6월의 일요일
노트북 화면에서 달그락대는 탄피들
비행기가 막 이륙한 뒤 국경을 넘는 난민들
팽팽한 잉크 사라예보 총
시집『좀 더 자렴』(포지션, 2019) 중에서
이미상 시인 / 모과를 깎다
몰랐다
썩은 부위가 커질수록 향이 짙어지는 모과
한번 갈라 볼까요
잘 썩어 하나 된 입 말랑말랑한 몸
트림을 참아도 새어나오는 내 냄새
한숨마저 달콤해
보나 마나 우린 잘 썩어가고 있습니다
시집『좀 더 자렴』(포지션, 201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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