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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 달맞이꽃
쥐똥나무 줄지어 늘어선 길을 따라 이제 저는 다시 세상으로 나갑니다 달맞이꽃 하염없이 비에 젖는 고갤 넘다 저녁이면 당신의 머리맡에 울뚝울뚝 노오란 그리움으로 피던 그 꽃을 생각했습니다 슬픔 많은 이 세상 당신으로 해서 참 많이도 아프고 무던히도 쓸어내던 그리움에 삼백예순날 젖으며도 지냈습니다 오늘 이렇게 비 젖어 걷는 길가에 고랑을 이루며 따라오는 저 물소리가 가슴 아픈 속사연을 품어 싣고 굽이굽이 세상 한복판을 돌아 크고 넓은 어느 곳으로 가는지를 지켜 봅니다 당신이 마지막 눈 한 쪽을 빼서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던 이 세상에 내 남아서 어떻게 쓸모있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당신은 철마다 피는 꽃으로 거듭거듭 살아나 보고 또 지켜 보리란 생각을 하며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고도 먼 길 앞에 이렇게 서서 한 번 더 뒤를 돌아다보고 걸음을 다시 고쳐 딛습니다 잎 지고 찬바람 부는 때는 외롭기도 하겠고 풀벌레 울음소리 별가를 스칠 때면 그리움에 아픔에 새는 밤도 있겠지만 이 세상 모든 이들도 다 그만한 아픔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사는 줄을 아는 까닭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멀리 가는 바람 속에 당신의 고운 입김 있으려니 생각하고 가장 먼 곳에서 가장 가까이 내리는 빗발 속에 당신의 뜨거운 눈물도 섞였으려니 여기며 저는 다시 이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걸어 내려갑니다 아픔 많은 이 세상 자갈길에 무릎을 깨기도 하고 괴롬 많은 이 세상 뼈를 꺾이기도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이야 누구에겐들 앗기우겠습니까 홀로 가는 이 길 위에 아침이면 새로운 하늘 한낮의 구름 달이 뜨고 별이 뜨는 매일매일 그런 밤 있으니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달맞이꽃 지천으로 피듯 우리들 사랑도 그런 어느 낮은 골짝에 피어 있겠지요 우리들 사랑도 그런 어느 그늘에 만나며 있겠지요.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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