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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남철 시인 / CROW'S­EYE VIEW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9.

박남철 시인 / CROW'S­EYE VIEW

 

 

1

 

예쁜 제자의 발랄한 몸매……

를 훔쳐보다 얼른 저녁 노을

을 쳐다보면 대우센터의 스카이라인이 쫘악

가르는 붉은 하늘 아래로

 

서울역 광장

 

밀리고 뒤섞이는 저 수많은 `짐승'들……

아아 나는 저 속에 도저히 도저히

저 속에서는 못 살겠네

나는 절에나 가야겠네

 

2

 

옛날에는 나도 그랬다 우리 선생님들 소설 속에서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만발했으면서도 생활 속에서

힘껏 그와 부딪쳐 보면 그는 언제나 안개처럼

모호하게 만져지는 게 없는─늘 속는 기분이었다

늙은 거짓말쟁이……

 

이제 자꾸 나이가 들고 피로를 알고 세상이 그다지

그다지 아름답게만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는 것을

확실히 확실히 알게 되고 또 그러한 앎에 의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이란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짐승의 차원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그런 것이라는

그런 슬픈 깨달음의 절벽이 문득문득 내 앞에서

 

파도처럼 비명을 지를 때

 

아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내 지난 날의

그 방자했던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해야

저 우리 늙은 정직한 선생님들의 `거짓말'들을

 

뛰어넘을─수가─있단─말인가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감사기도

 

 

한 편의 좋은 시를 쓰느냐 못 쓰느냐 하는 문제보다 한 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살    아남는 문제가 더 급했다(보,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

 

주여 감사하고 감사하옵니다 감사

하고 감사하옵니다 감사

 

오늘 이 불 타는 이 몸을 또

이렇게 이 세상 이 모든 일들이 다

이렇게 전능하신 당신의 뜻대로 다 이루어지게 됨을

주여 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뜻대로 사랑되고 축복이 되어

오 주여 제 이 한 몸 제 이 모든 고통들이

 

다 우리 자비로우신 우리 주님의 계약된 축복,

이었음을 다 주여 제 이 모든 고통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척하며 괴로와하였던 저를 주여 알고 계셨더군요

귀엽게 생각하실 줄을, 용서하여 주실 줄도 이미 다

알고 있었지요만, 오 주여 제 이 모든 빛과 어둠들이

 

송두리째 당신의 뜻으로 되어

주여 저는 언제나 믿고 믿을 수, 없었사오며, 오

주여 저는 안 믿는 척하며 남 몰래 믿고, 있었사오며

저는 끝끝내 믿고 믿을 수밖에는 그렇다고 별도리도

없었사오며, 두 다리 벌리고 서서 하늘 향해 울부짖을

수밖에는, 없었사오며, 오 주여 저의 이 모든 사랑들이

 

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 올리면서

언제나 옆에 느껴지는 아버지시여…… 기필코 당신의

 

빚 갚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보, 보인다, 보인다, 보인다!)

 

아멘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공황

 

 

열차가 지나간다

25,000V의 고압선을 따라

 

내 왼쪽 귓속을 뚫고 들어가

오른쪽 귀 밖으로 탄환처럼 열차가

열차가 빠져 열차가 달아난다

 

어머니─어머니─이─고통을─이─고통을─,

 

`세월이여!'

`시간이여!'

`역사여!'

 

어머니머니니이이이……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광인일지

 

 

1

 

`헛수이, 쳐라!'

 

저런 늙은 놈 보게

저 저 저 저

가랭이를 쪽 찢어 죽일

 

머 어째, 으쩌, 별들이 요절하는 소리 좀 들어 보라고?

 

저 저 저 저 저,

저런 늙은 놈 보게

 

환갑이 지났으면 이젠 철

들 때도 됐을 텐데

국으로 주는 밥 먹고 그냥

가만 있어도 책임이 많을 그 나이에

 

저 저 저 저 저, 으쩌

저런 늙은 놈 좀 보게

 

오입이 안 될 나이니까 이젠 원 별

소리도 다 하나 봐

 

쩌 저 쩌 쩌 쩌, 더 쳐라, 원 별

별 ×지 껌 씹는 소릴 다 하네

 

저 저 저 저 저, 더 쳐라, 으쩌

저런 늙은 놈 좀 보게

 

저 저 저 저 저, 더 쳐라,

저런 늙은 놈 좀 보게

 

봐 봐 봐 봐 봐, 으쩌,

 

히히히히히히히…… 정말 죄송합니다……

요새 하도 장단이 맞지 않아서 그냥 장단 한번 맞춰 보았을 뿐입니다……

 

2

 

이제 잠들 좀 깨느냐

이제 잠들 좀 깨느냐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악머구리 같은 내 형제들이여

이제 잠들 좀 깨느냐

 

너무 아프더냐

너무 억울하더냐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이제 그대들이 깨어나면서

퍼부운 융단폭격에 이제 내 몸은 병들었구나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아직도 내가 그렇게도 미우냐, 아 슬프구나 아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저기 지하에서 깨어난 큰 사육신 형님들도 몇 분 계시는구나

 

얼럴럴 네기럴꺼,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형제들이여

저기 하늘에서 깨어난 큰 생육신 형님들도 몇 분 계시는구나

 

반시대적 고찰, 한겨레, 1988

 

 


 

박남철(朴南喆) 시인

1953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9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시 〈연날리기〉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와 『반시대적 고찰』(한겨레, 1988 / 세계사, 1999) , 『러시아집 패설』(청하, 1991)와『자본에 살어리랏다』(창작과비평사, 1997), 『바다 속의 흰머리뫼』 (문학과지성사, 2005), 『제1분』(문학수첩, 2009)과 시선집 『생명의 노래』(문학세계사, 1992) 와 박덕규와의 공동시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청하, 1982)와 박남철 비평시집  『용의 모습으로』 (청하, 1990)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