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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하 시인 / 새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9.

김지하 시인 / 새

 

 

저 청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저 눈부신 산맥

왜 날 울리나

날으는 새여

묶인 이 가슴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피만이 흐르네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

낮이면 낮 그여 한 번은

울 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

시뻘건 몸둥아리 몸부림 함께

함께 답새라

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

 

낮이 밝을수록 침침해가는

넋 속의 저 짧은

여위어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

떠나가는 새

 

청청한 하늘 끝

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덧없는 가없는 저 눈부신 구름

아아 묶인 이 가슴.

 

타는 목마름으로, 창작과비평사, 1982

 

 


 

 

김지하 시인 / 새봄 1

 

 

바람 차다

온몸에 새순 돋는다

 

새들이 우짖는다

터파기 굉음이 시끄럽다

 

쓰레기산 난지도

통일전망대 가는 길.

 

중심의 괴로움, 솔, 1994

 

 


 

 

김지하 시인 / 새봄 2

 

 

삼월

온몸에 새순 돋고

 

꽃샘바람 부는

긴 우주에 앉아

진종일 편안하다

 

밥 한술 떠먹고

몸아픈 친구 찾아

불편한 거리를

어칠비칠 걸어간다

 

세월아 멈추지 마라

지금 여기 내 마음에

사과나무 심으리라.

 

중심의 괴로움, 솔, 1994

 

 


 

 

김지하 시인 / 생명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별밭을 우러르며, 동광출판사, 1989

 

 


 

 

김지하 시인 / 서울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황토, 한얼문고, 1970

 

 


 

 

김지하 시인 / 성자동 언덕의 눈

 

 

지금도 너는 반짝이느냐

성자동 언덕의 눈

아득한 뱃길 푸른 물구비 구비 위에

하얗게 날카롭게

너는 타느냐

 

산 채로

산 채로 묻힌 붉은 흙을 헤치고

등에 칼을 꽂은 채 바다로 열린 푸른 눈

썩은 보리와 갈라진 논바닥이 거기서 웨치고

거기서 나의 비탄은 새파란

불꽃으로 변한다 너는 타느냐

 

마주한 저 월출산 아래 내리는

저 용당리 들녘에 내리는 은빛

비행기의 은빛 비늘의 눈부심, 독한 눈부심 위에 아아 푸른 눈

침묵한 아우성의 번뜩임이 거기서 타느냐

지금도 너는 반짝이느냐

성자동 언덕의 눈

하얗게 날카롭게 너는 타느냐.

 

황토, 한얼문고, 1970

 

 


 

김지하(金芝河, 1941~) 시인

1941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는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애린』, 『검은산 하얀 방』, 『이 가문 날의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중심의 괴로움』, 『화개』 등이 있고,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생명』, 『생명과 자치』, 『사상기행』,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대설(大說)『남』, 『김지하 사상전집 (전3권)』, 『김지하의 화두』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 회의 로터스 특별상(1975),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 (1981),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등과 이산문학상 (1993), 정지용문학상 (2002), 만해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