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 시인 / 새
저 청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저 눈부신 산맥 왜 날 울리나 날으는 새여 묶인 이 가슴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피만이 흐르네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 낮이면 낮 그여 한 번은 울 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 시뻘건 몸둥아리 몸부림 함께 함께 답새라 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
낮이 밝을수록 침침해가는 넋 속의 저 짧은 여위어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 떠나가는 새
청청한 하늘 끝 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덧없는 가없는 저 눈부신 구름 아아 묶인 이 가슴.
타는 목마름으로, 창작과비평사, 1982
김지하 시인 / 새봄 1
바람 차다 온몸에 새순 돋는다
새들이 우짖는다 터파기 굉음이 시끄럽다
쓰레기산 난지도 통일전망대 가는 길.
중심의 괴로움, 솔, 1994
김지하 시인 / 새봄 2
삼월 온몸에 새순 돋고
꽃샘바람 부는 긴 우주에 앉아 진종일 편안하다
밥 한술 떠먹고 몸아픈 친구 찾아 불편한 거리를 어칠비칠 걸어간다
세월아 멈추지 마라 지금 여기 내 마음에 사과나무 심으리라.
중심의 괴로움, 솔, 1994
김지하 시인 / 생명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별밭을 우러르며, 동광출판사, 1989
김지하 시인 / 서울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황토, 한얼문고, 1970
김지하 시인 / 성자동 언덕의 눈
지금도 너는 반짝이느냐 성자동 언덕의 눈 아득한 뱃길 푸른 물구비 구비 위에 하얗게 날카롭게 너는 타느냐
산 채로 산 채로 묻힌 붉은 흙을 헤치고 등에 칼을 꽂은 채 바다로 열린 푸른 눈 썩은 보리와 갈라진 논바닥이 거기서 웨치고 거기서 나의 비탄은 새파란 불꽃으로 변한다 너는 타느냐
마주한 저 월출산 아래 내리는 저 용당리 들녘에 내리는 은빛 비행기의 은빛 비늘의 눈부심, 독한 눈부심 위에 아아 푸른 눈 침묵한 아우성의 번뜩임이 거기서 타느냐 지금도 너는 반짝이느냐 성자동 언덕의 눈 하얗게 날카롭게 너는 타느냐.
황토, 한얼문고, 1970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남철 시인 / 그 자식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외 3편 (0) | 2020.02.10 |
|---|---|
| 신경림 시인 / 허재비굿*을 위하여 외 2편 (0) | 2020.02.09 |
| 김정환 시인 / 모내기 외 2편 (0) | 2020.02.09 |
| 최하림 시인 / 정방폭포 외 1편 (0) | 2020.02.09 |
| 박남철 시인 / CROW'SEYE VIEW 외 3편 (0) | 2020.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