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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철 시인 / 그 자식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원제 : 그 자식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하고
밤에 편지를 쓰지 마라 가장 진실한 말들이 튀어 나와서 아침에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밤에 가장 고요하고 가장 진실한 순간에 쓴 편지는 낮의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미친 놈……
하고 한번 씨익 웃을 뿐이다 그리고 그 편지를 읽은 사람은 그 편지를 보내 온 사람을 경멸하게 된다 전달되지 않는다
편지란 계산과 계산이 뒤얽힌 낮에 쓸 일이고 가장 공격적인 사색과 방어적인 침묵이 태양과 함께 작열하는 낮에 쓸 일이고 그리고 편지는 되도록 쓰지 않을 일이다
우리가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몇 줄 끄적거린 밤의 편지는 대체로 실패작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밤에 할 수 있는 일이란 편지를 쓰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토로하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벗기고 진실을 끌어안고 진실을 겁탈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밤의 편지가 전달되지 않는 이 낮의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는 일이다 그들의 가장 씩씩한 껍데기들을 조용히 조용히 지켜 보는 일이다
밤에 전화를 걸지 마라 특히 밤에 술에 취해서 전화를 걸지 마라 전화를 받던 사람은 그때 마누라를 더듬고 있었다 야 이 미친 개 같은 놈아 수화기가 부서져라 전화를 끊은 사람은 그때 마누라와 결정적인―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또는 수화기를 아예 들어 보지도 못한 바로 그 사람은 그때 마누라에게 원산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이제 죽어도 죽어도 더 이상 같이 못 살겠어요…… )
제기랄 밤에 밤에 라면을 끓여 먹지 마라 밤에 교차로의 신호등을―그 자식들은 끊임없이 혼자서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하고 있더라―신호등을 멍하니 쳐다보고 섰지도 마라
어디로 가야 하니 이 길 잃은 시대의
밤에 별도 쳐다보지 마라 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애국자들이 밤에 여관 문을 힐끔 나오는 여자도 쳐다보지 마라 그 여자가 얼마나 부끄럽겠느냐 저것 봐라 저것 봐 저 안 부끄러운 척하고 내 옆을 토각토각 지나가는 것 좀 봐 이 밤에
밤에 정치 문제는 생각지 마라 밤에는 `4․19' 같은 것도 생각지 말고 밤에는 `유한계급론'도 `마르쿠제'도 읽지 마라 밤에는 싸구려 출판사에서 나온 `잠 못 이루는 너희들의 괴로움을 위하여'를 읽어라(읽고는 대단히 감명 깊게 읽었다고 생각하라)
밤에는 밤에는 좀더―어디로 가야 하니 이 길 잃은 시대의 정신이여
밤에는 빨래도 하지 말고 밤에는 개처럼 밤에는 시인(詩人)처럼 시(詩)도 쓰지 말고 제발 더 착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밤에는 기도도 하지 말고
오 거 무엇이냐 밤에는 밤에는 좌우지간 밤에는 나자빠져서 `나도 기필코 결혼할 수 있다!'라는 자기 암시나 부지런히 해 둬라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그리고 빈처(貧妻)
`어째 그녀는 요즘 자꾸 자기가 자는 옆에서 공부하라더니만'
1
『김수영전집 I 시(金洙暎全集 I 詩)』를 들추다가
아니, 이건 또 무슨 짓이야, 『김수영전 I 시(金洙暎全 I 詩)』라니!
「만시지탄(晩時之嘆)은 있지만」이란 시(詩)에 나타난 김수영(金洙暎)의 책에 관한 의식을 추적해 보다가 이 밤 나는 또 한번 그녀의 강펀치를 맞고 얼얼해짐을,
옆에서 세상 모르고 자는 그녀를 흔들어 깨우니 `응, 응, 낮에 심심해서 잉크지우개로 지워 버렸지……' 한다
그녀의 장난끼와 욕구 불만, 김수영(金洙暎)의 시(詩)처럼 돌올한 두 개의 `전(全)' 자(字)는 전체주의에 반항한다는 한 이기적인, 더욱 전체주의적인 `방법통설(方法通說)'의 경직성을 향해 `만시지탄(晩時之嘆)은 있지만 제발 아부(阿附)에도 여유는 좀 있어야 한다는 말일쎄' 하면서 비수(匕首)처럼 파고
2
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어렴풋이 `아내'가 수면(睡眠)을 위한 운동 기구라느니 세탁 기계 돌리는 기계 또는 고물 피아노 둥당거리는 보온 밥통……만도 아님을 어렴풋이…… 황(黃)××이 지가 먼데! 〔→`맙소사, 이건 어느 선생님, 아니 싸부님에게 야단맞고 술이 떡이 되어 돌아온 날 그녀가 내뱉은, 맙소사, 내 사람이여!'〕
3
지금도 그녀는 자면서도 싱긋 웃으면서 난 닭이 되고 싶어…… (암탉이 울면……) 무슨 계란 같은 개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금도끼 Ⅲ
나누나나는오늘도무지무지하게소설가가되고싶지금은비록이토록소주와쥐포를놓고고독하지만언젠가는나도유명해져서행복해질것을믿사실난대학교2학년때단편소설한편썼었는데누나그때그소설의제목이바로저유명한`금도끼Ⅲ'이였더랬
한병역을갓마치고나온핸섬한대학2년생이누나그애는하루종일담배를꼬나물고도심을방황하면일류대학뱃지를붙인예쁜계집애만보았다누나그애는그애를웬일인지어떻게든꼬드겨서번쩍번쩍빛나는금도끼로찍으니안눕는나무가없공원에서호텔에서싸롱의화장실에서불란서영화처럼정치(精緻)하게성교를해버리고나누나누나그애는그렇게섹스를해버리고나서는넌참맛없는애로구나어머어머니말이나남겨누나그애는그렇게외국영화처럼뒤도한번돌아보지않고
이도대체가난잡한방탕하기짝이없던그초고를나는나지금은비록시인같은시인이되어버린나의후배하재비록시인같은아주심한표정으로읽어보더니형그만나는절대로울어버리고싶은거야뭐라고그랬니너는너아주시적이고운명적인발광을그후배야임마워낙심각하고시적인기질이다분한그후배는형아형은드디어저질러버리고말았군요형아형은어디잡지사같잖다같은데라도보내보자고야단이
나누나나야뭐걔가그렇게감동했다고서가아니나야뭐형이야뭐야기실그얘기는바로같잖은내얘기인셈이었으니내답답하고억울한젊음에대한보복적인파괴인셈이었무에그리답답하고억울했느냐고묻는다글쎄나야뭐할말이없그누구에겐가라도나의이분함을송두리째갚아주어누나누나는그날부터그미완성을붙들고쓰러지고또쓰러졌는데아니것도아니야이것도진짜는아누나나는정말콱죽어버고만싶물도안나와며칠씩이나밤샘을해가며탈고해놓아봐야이씨발그때마다그분노의괴물은픽퇴짜만놓는이도대체가불확실한대상도이유도없던이싸움이내가슴속밑의그성난고집이도무지나의그피나는수고를눈부신예술그자체를럴럴럴이이렇게도써보고저렇게도써보라누나나는정말이러다간내가돌아버리지나않나두려울얼얼얼앉았다일어서면머리가핑돌정도로근달포이상이나계속된그부끄러운걸헌팅얘기가건방지게내건강조차넘보려드는어어씨발새끼
그러나드디어그러던어느날줄줄비가몹시내드디드디어오오오누님누님나는드디어나의그미완성의처녀작을쓰레기통속에처박아버리고어머어끼득끼득눈물을흘리며미친듯이웃었더랬습기끼인미친듯이차를잡아타고오서울이비내리는무교동이며광화문오명동거리비내리는거좋은거리로우산도없이걸어계집애하나같이비내리는거리를내다보며술을마시며내다시는그따위바보짓은두번다시않으리라고누나나는속으로내다시는그따위바보짓은누나는하나같이속으로결국언젠가는비내리는나의앞날을미리내다보며속으로
그리하여누나나는그럭저럭술이깨어깨기도하면서세월은그저적당히밋밋하밋밋밋하지도않게그렇지만나도얼렁투당탕대학은졸업하여국어선생이되어버리따닥닥세월은그저유행가의젓가락처럼그럭저럭그렇게제자들과입씨름도하면서선생님선생님은너무잘난척하지마럭저럭살아가아그런데누나누나는그럭저럭그냥그렇게적당히살아가려했는데아아니이런세상에이런때려죽일놈들이
신문신문의새해특집신문의아아당선소감히설교도좀하면서그리고엄마나챔피언먹었어그래잘했다그리고마지막으로뽑아주신여러선생님들에게이무슨개지랄들인지발광인지아아세상에이무슨이따위이런얼어죽을놈들이도대체저설익은당선소감선소감소감소감아아내가썼다면추악한얼굴들의사진까지크게곁들인아아누나나는실로그철천지웬수같은놈의신문들을아아누나나는도저히그냥바라볼수가누나
나누나누나눈물한방울도안나누나ㅎㅎㅎ눈물한방울도나누나나는오늘도정말무지무지하게정말너무너무소설가가되고싶지마아는그누구도모르누나내생각을마음껏뽑아보여서그모든사람들이나만보면질투하고증오하도록하고싶같이최×호(崔×浩)같이누나돈도좀많이벌고아누나나는지금그때함부로내쓰레기통속에던져버렸그작품을아그금도끼를한번다시쓸수만있다면돈도벌고정말이지정말그금도끼를한번다시휘두를수만있다정말이지위대한출발을한번할수있을텐데돈도벌고하는누나나는지금그때내가함부로내가ㅋㅋㅋ소줏잔을홀딱비워버리면서누나나는지금ㅇㅇㅇ
누나이젠다끝나버렸으니도로올라가서일보시요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깨어진 거울 앞에서
어느날 갑자기 나는 박남철(朴南喆)씨가 소설마비로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았다 나는 깜짝 아니 이 럴 수가 세상에 그분이 돌아가시다니 나는 천정이 내려앉는 것을 오오 세상에 그 선한(善漢), 분이 돌아가시다니 이제 우리는 다 살았다 그 워낙 속 좁은 분이 돌아 가시다니 온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분은 정말 가셨을까 나는 부르르 그분이 가신 곳은 지옥(地獄)일까 설마 안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그분의 아내들은 나는 다 어떡하라고 그분의 영애 유희(柳姬)님은 그분이 맡았던 경희사단(慶熙社團)은 세상에 그분이 아끼시던 그토록 잃어버린 만년필들은 보면 볼수록 발바닥 가렵던 과연 한국(韓國)은 무사할까 연탄값은 안 깨어질까 과연 유가 증권도 폭등(暴騰)은 안 일어날까 생전에 오오 세상에 생전에 그분이 하신 그 말씀들은 과연 그대로 남을 수도 없을까 보면 볼수록 겨드랑이 가렵던 나 보기가 역겨운 자들은 그대로 과연 남을 수도 있을까 너희들 모조리 이민(移民)가 버리라시던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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