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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 돌아온 아이와 함께
지금 당신 앞에 돌아와 무릎 꿇고 올리는 이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달도 없는 밤 가을 숲 속에서 몇 밤을 지새고 다섯 번째 도둑질을 하다 들킨 왼손을 오른손의 칼로 내리긋고 피 흘리며 돌아온 아이의 한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 당신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이 아이가 자라며 원망해온 남루함과 헐벗음 누추함보다 이 아이의 아비가 진흙에 손을 넣고 대대로 빚어온 붉고 고운 항아리들의 의미가 더욱 값진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 이 아이가 자라면서 동경해온 풍성함과 사치스러움 비어 있는 반짝거림보다 흙에서 건진 것들로 일용할 그릇을 삼는 저 정직한 옹기들의 넉넉함이 더욱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가마 옆에서 평생을 살아오는 이들과 그 이웃들의 가난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당신께 이 아이가 원망해온 것들과 유혹에 빠져온 나날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셨을 당신께 또다시 죄의 보속을 비옵는 까닭은 그들을 빼앗김과 짓눌림 한스러움에서 더욱 벗어나지 못하도록 옥죄어오는 끈끈한 거미줄이 이 땅의 어느 구석에서 움솟는 것인지 그들에게 바르게 이야기하고 참되게 일깨워 제 손에 칼을 긋던 다른 한 손을 들어 결연히 그 어떤 것을 금 그어 가야 하는지를 아직 다 깨우쳐 주지 못한 까닭입니다 자신을 속이며 쉽게 쉽게 사는 일보다 흙을 디디고 흙을 만지며 정당하게 노동하는 일이 보람찬 삶임을 뜨겁게 깨닫는 아이가 되도록 바른 삶의 지혜를 불어넣어 주시옵고 제게 맡기신 가난한 이 땅의 많은 아들 딸 들도 어떻게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우리를 바르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지 우리가 진정 미워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아이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시옵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흔아홉 번 용서하시고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시는 당신 앞에 돌아온 아이와 함께 무릎 꿇고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피 흘리며 돌아온 이 아이의 한 손에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제 한 손을 포개어 당신께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접시꽃 당신, 실천문학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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