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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고니 시인 / 풍장(風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1.

김고니 시인 / 풍장(風葬)

 

 

너럭바위에 뉘인 어머니의 넋이 빠져나가는 순간을 지켜본다

‘0’ 이라는 숫자가 그토록 서러웠던가

명부를 들고 있던 응급실 당직의가 사망선고를 하던 순간

어머니의 넋을 잡고 떼를 써보지 못한 나를 원망한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던 날을 떠올린다

자주 들를게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어미의 숙명이라지만

살점들을 뭉텅 떼어내고도 눈물을 참아내던 어머니를

무심코 바라보던 나에게 화살을 쏜다

 

어머니의 뼈를 가르며 첫울음을 울던 날을 기억한다

마지막 숨소리에 닿아 있던 소리를 듣는다

시간을 거슬러 날아온 화살이 어머니의 심장을 관통했다

핏덩이를 안고 젖을 물리던 가슴에서 피가 흐른다

 

짐승들이 달려든다

남은 것은 ‘0’

새벽 응급실은 고요했다

 

 


 

 

김고니 시인 / 연기

 

 

흰둥이가 짖는다

그것은 울음이다

생명이 시작된 곳에서 비에 스며들었던 그 울음

 

집이 없던 오랜 시간 속을 살던 개가 흰둥이 앞에 섰다

등신불이다

겨울비를 맞는 하얀 몸뚱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불속에서만 등신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빗속에서도 온몸이 타오르고 있다

태초의 울음을 울어야만 멈출 수 있는 연기

 

우산을 내려놓고 운다

비는 뜨거웠다

온몸이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린다

영겁을 울었던 짐승의 눈물이 온몸을 적시며 시간을 울고 있다

 

흰둥이의 울음이 멈추었다

두 개의 등신불이 겨울 속에 서 있다

 

태초의 울음을 울어야만 멈출 수 있는 연기

해탈의 시간 속에 나는 서 있다

 

 


 

김고니 시인

2016년 월간 《see》  추천 시인상을 등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발자국』, 『냉장고를 먹는 기린』 ,『팔랑』과 공저 『첫눈 오는 날』이 있음. 2017년, 2019년 강원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금 수혜. 현재 서울시인협회, 강원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