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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철 시인 / 꿈
괴롭고 혹독한 시대여 그것은 바로 너이니라 내가 이 말을 하면 또 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가 한번 ─아아,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1
나는 이제 대학 교수가 될 꿈을 버린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꿈이라는 걸 너희들은 알고 있니?)
나는 이제 시인(詩人)이 될 꿈도 포기한다 (이 역시 얼마나 무서운 꿈이라는 걸 너희들은, 이건 괄호도 닫지 않겠다
이제 나는 악인(惡人)을 위한 진정한 악인(惡人)을 위한 악인(惡人)이 될 꿈도 포기한다, 이건 아예 괄호도 없애겠다
이렇게 되면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와의 성교도 이젠 도무지 진력이 나 버렸다(그녀는 약간 섭섭해한다)
2
자, 찌를까, 찌를까, 아주 깊숙이 찔러 줄까, 자, 찌른다, 나는 정말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나는 정말 한번 찌른다면 찌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끝장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자기 암시가 들어 있으니까)
무슨 얘기 하는지 아시겠지? 이건 일종의 깊숙한 공갈이다─나는 동시에 파괴하는 사람이니까
3
사랑이여 한 발짝만, 제발, 비켜서 다오, 제발 한 발짝만, 한 발짝이 너무 그렇더라면 반 발짝만, 반 발짝도 너무하다면 반의 반의 반 발짝만, 그래도 그게 너무하다면, 제발 가는 말이라도 곱게 빈말이라도
안 돼, 빈말이 따뜻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나그네
내가 지나갈 때에는 안개만 냅다 깔린다
내가 지나갈 때에는 바람이 불어오다가 허허 지나갈 때에는 구름이 덮여 오고 구름이 덮여 오고 번개가 드립다 터지면서 으흐 지나갈 때에는 슬픔이 비처럼 내린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나는 그래도 주인공인데……
내 지나는 곳에는 고독만이 깔려 있고 내 지나는 곳에는 후회만이 몰아치고 씨양 지나는 곳에는 분노만이 뒤덮인다 분노가 뒤덮이고 오기가 뻥 터지면서 끄으윽 지나는 곳에는 술이 비처럼 내린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이 내가 젖으면 비극이 되잖아
우후 내가 지나갈 때에는 약속과 외상만 깔린다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다시 거울 앞에서
나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를 이기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이겼다, 그리고 나 그날부터 줄기차게 외로왔다
1
아무래도 나는 시(詩)나 쓰면서 살아야 하느냐 나는 아무래도 꿈만 꾸면서 또 꾸고 아무래도 나는 시적(詩的)으로만 울어야 하고 아무래도 나는 기다려야만 하느냐 기다랗게 늘어진 내 기다림의 모가지와 기다랗게 늘어진 내 기다림의 팔다리와 기다랗게 늘어진 이 시(詩)들은 성욕들과, 잡것이 아무래도 수상쩍은 이 수상한 일대기 에헤라, 나는 아주 드러누워 버려야만 하겠느냐
2
거울을 깨고 싶다 저 `소아지' 같은 나의 몰골 저 거울 속에는 현이도 없고 유희도 없고 저 거울 속에는 집도 없고 절도 없고 현아 숙현아 너는 나의 제자가 아니냐 저 거꾸로 된 거울 속에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고 야윈 소 크라테스, 소새끼 같은 나의 몰골, 저 사각(死角)의 거울 속에는 바를 것도 없고 그를 것도 없고 보아라 보아 봤자 너는 보잘 것도 없지 않느냐 저 빌어, 배라먹을 놈의 거울 저 망할 놈의 반시세계(反詩世界), 아무래도 나는 저 거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버려야만 하겠느냐
3
언젠가 굉장한 시집(詩集)을 낸 굉장한 거울을 처음 만나 어디서 널, 너를 봤더라 어디선가 봤더라 네, 그 녀석은 경북 성주에서 나보다 2년 앞서 태어난 놈인데 제기랄 그 녀석은 좌우지간 나보다 앞서 가는 도둑놈이었고 아무래도 나는 너는 잡시(雜詩)나 쓰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무래도 나는 너를 어디선가 많이 본 놈인 듯도 한데 어디선가 봤더라 저 거울에 비친 녀석을 대관절 어디서 내가 봤던지 빌어먹을, 저 녀석은 흉내 내는 것조차 흉내 내는 놈이고 저 우라질 놈의 거울, 저 얼어 죽을 자식 `박(朴)아지'의 몰골 아무래도 나는 저 놈의 반시(反詩)를 깨뜨려버릴수는없는것이냐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박남철 시인 / 독자놈들 길들이기
내 시(詩)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 차렷, 헤쳐 모엿!
이 좆만한 놈들이…… 헤쳐 모엿,
(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 따위로들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지상의 인간, 문학과지성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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