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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설태수 시인 / 우리들의 샹그릴라 191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2.

설태수 시인 / 우리들의 샹그릴라 191

 

 

피어남을 겁내지 않는다.*

꺾어지고 찢어지고 뭉개지는 광경들은

꽃을 거스르지 못하는 과정이다.

완벽하게 파멸할 수 있는 에너지.

안타까움에도 한눈팔지 못하는 외길.

꽃 가는 길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태풍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꽃이 눈길 끄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몸이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사유가 된다.

피어나는 것이 몸이기에

깨지고 무너지고 쭈글쭈글한 거죽으로 가도

물러서는 법 절대 없다.

피어나지 않는 시기가 없으니

몸은 소멸을 겁내지 않는다.

멸망케 하는 힘이 존재의 꽃이다.

피어나는 것은 겁나는 것이 없다.

 

*凋殘不求 發洩不畏(앙상함을 추구하지 않고 피어남을 겁내지 않는다― 하영휘 옮김)

 

계간 『예술가』 2019년 여름호 발표

 

 


 

 

설태수 시인 / 우리들의 샹그릴라 152

 

 

가죽장갑 손목에 손톱 크기의 금속이 장식되어 있다.

밋밋해 보이는 장갑에 포인트 역할. 하늘에 까치 매 독수리의

날개마다 다른 무늬. 동료 아닌 것들과의 식별용으로만 쓰일까.

그들의 포인트로 허공을 칼 긋듯이 쓰윽 쓰윽 쓰윽

쓰윽, 멀리 있는 별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

결코 진리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일까.

진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가.

포인트인 당신과 나 두두물물.

빅뱅 이후 138억 년이 후딱,**** 현재가 포인트로 반짝거린다.

포인트 없으면 138억 년이 밋밋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苦가 生을 가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박찬일, <시대정신과 인문비평> 74쪽.

**, ***니체의 진술. (같은책 62쪽).

****138억 년의 첫 번째 의의는 138억 년이 후다닥(?) 지나갔다는 점.(박찬일, 같은책 78쪽) 참조.

 

계간 『예술가』 2019년 봄호 발표

 

 


 

설태수 시인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열매에 기대어』, 『푸른 그늘 속으로』 등이 있음. 현재 세명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中.